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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그러나 어릴 때부터 이런 타이틀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겠다는 입장을 기회 있을 때마다 피력하고는 했다. 타고 난 끼를 살려 대학도 베이징스판(北京師範)대학 예술학과를 선택했다. 이후에는 가수로 데뷔, 나름 그럭저럭 이름을 알렸다. 곧 결정적인 전기도 찾아왔다.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개막식 때 주제곡을 불러 대히트를 친 것이다.
그녀는 이 성공으로 일본에서도 리사이틀까지 여는 등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나중에는 대만 출신 덩리쥔(鄧麗君)의 후계자가 되는 것이 어떻겠냐는 일본 연예계의 러브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 만의 길을 걷겠다면서 단호하게 거절했다.
안타깝게도 이후부터 그녀는 대중의 시선에서 사라졌다. 사랑을 찾아 영국인과 결혼, 런던으로 이주한 탓이었다. 현재 그녀는 중국과 영국을 오가면서 연예 활동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이전만큼의 명성을 되찾지는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고 한다. 황실 혈통에 연연하지 않았던 것처럼 평범하게 사는 것에 단단히 맛이 들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