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도 만세사표(萬世師表)의 지성(至聖)으로 평가받는 공자의 77대 적손녀(嫡孫女·직계 손녀) 쿵더마오(孔德懋) 전 중국인민정치협상회(정협) 중앙위원이 15일 베이징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105세로 장지는 일단 국립묘지에 해당하는 바바오산(八寶山) 혁명공묘가 될 가능성이 높다. 공자의 적손녀라는 상징성으로 볼 때는 이후 적절한 시간 산둥(山東)성 취푸(曲阜)에 이장될 수도 있다.
베이징르바오(北京日報)를 비롯한 언론의 16일 보도에 따르면 쿵 전 중앙위원은 출생지는 취푸의 공자 생가인 공부(孔府)이나 17세 때 일찌감치 베이징으로 이주했다. 이후 공산당이 아닌 무당파 인사로 활동하면서 주로 자선 및 공익 사업을 위해 젊음을 바쳤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인생 말년에는 중국공자기금회 부회장과 중국평화통일촉진회의 이사장 등의 자리에 올랐다. 정치적으로 중국 당국으로부터 상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할 수 있다. 1983년부터는 연속 3번이나 정협 위원에 당선되면서 중앙위원의 자리를 차지했다. 사망하기 전까지 전국 유일의 정협 종신 위원이 되는 기록 역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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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대만 타이베에서 마지막으로 만난 쿵 전 중앙위원과 동생 쿵더청. 이후에는 다시 만나지 못했다./제공=베이징르바오.
그는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이산가족으로도 유명하다. 1948년 동생인 쿵더청(孔德成)이 공산당에 패주하는 국민당 군을 따라 대만으로 이주한 탓이다. 이후 둘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다 1980년대 말 일본 도쿄에서 처음 극적으로 재회한 후 1995년 대만 타이베이에서 마지막으로 만났다. 그의 나이 78세 때였다. 둘은 그러나 고령의 나이로 인해 영원한 이별을 해야 했다.
쿵 전 중앙위원은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지난 2001년 경상북도와 안동시가 퇴계 탄신 500주년을 기념해 안동에서 개최한 세계유교문화축제에 참석한 적이 있다. 당시 그는 퇴계의 16대손인 이근필 씨와 손을 맞잡고 개막을 알리는 행사장 성화대의 불을 밝혀 화제가 된 바 있다.
그의 사망으로 중국에서는 공자의 대가 완전히 끊겼다. 그러나 대만에서는 아직 쿵더청의 손자인 79대 적손 쿵추이창(孔垂長·46)이 대를 이어가고 있다. 쿵 전 중앙위원은 2018년 7월 베이징에서 할아버지를 대신해 고모할머니를 찾은 그를 만나 육친의 정을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