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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재계 정보에 밝은 베이징 소식통의 15일 전언에 따르면 지난 세기 말부터 부동산 사업에 투신한 헝다는 2007년 홍콩 증시에 상장될 때만 해도 지금의 거인으로 성장할 재목은 아니었다. 당시 자본금은 고작 39억위안에 불과했다.
15일 오후 기준의 시가총액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고작 213억 홍콩달러(3조1950억원)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도저히 2조위안 가까운 부채를 감당할 능력이 안 된다고 단언해도 좋다.
하지만 헝다가 웬만한 중견 국가의 국내총생산(GDP)보다 많은 천문학적인 부채로 파산에 직면한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라고 해야 한다. 시가총액의 무려 100배 이상의 부채를 끌어다 쓰게 된 배경은 별로 어렵지 않게 파악이 가능하다. 상장 이후 쉬자인(許家印) 창업자가 당시 정권의 실세들인 쩡칭훙(曾慶紅) 전 국가부주석, 자칭린(賈慶林) 전 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 등에게 접근, 엄청난 로비를 벌인 것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중국 당정 최고위층의 권력은 서방 세계의 상상을 불허한다. 권력이 바로 돈이라는 말이 항간에 유행할 정도라면 더 이상 설명은 필요 없다. 이런 현실에서 은행들이 정권 실세를 등에 업은 헝다를 무시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당연히 마르지 않는 샘물의 역할을 자임할 수밖에 없었다. 금융권에 대한 헝다의 현금 로비 역시 이 과정에서 한몫을 단단히 했다고 봐야 한다.
진실은 언제든지 밝혀지게 돼 있다. 비정상적인 금융 혜택으로 쾌속 성장 기적을 일궈온 헝다의 민낯 역시 예외가 아니다. 지난 12일 열린 제9회 중국기업가발전연회(年會)는 바로 이런 헝다의 정체가 밝혀진 자리라고 할 수 있다. 이날 발언에 나선 차오더왕(曺德旺) 푸야오(福耀)유리그룹 회장이 “헝다는 39억위안의 자본으로 2조위안의 부채를 끌어다 썼다. 이것이 중국식 금융이다”라면서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하지만 화살은 이미 활 시위를 떠난 뒤였다. 헝다의 파산으로 인한 힘겨운 뒷처리는 온전히 중국 금융 당국의 자업자득이 됐다고 해야 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