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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 맏며느리’ 류쓰치 별세…두 딸만 남은 毛 가문 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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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도 베이징 특파원

승인 : 2022. 01. 09.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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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도 직계는 달랑 1명에 불과…증손 역시 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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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전 남편 마오안잉을 기리는 자서전 출판 기념회에 참석한 생전의 류쓰치 여사. 고작 1년 남짓 부부의 정을 나눴으나 평생 이를 잊지 않고 살았다고 한다./제공=신징바오(新京報).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전사한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의 장남 마오안잉(毛岸英)의 부인 류쓰치(劉思齊) 여사가 최근 별세했다. 향년 92세로 비교적 장수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마오 전 주석 가문의 2대 직계 가족은 리민(李敏·86)과 리너(李訥·82) 두 자매만 남게 됐다.

베이징르바오(北京日報)를 비롯한 언론의 9일 보도에 따르면 고인은 후난(湖南)성 출신으로 부친인 류쳰추(劉謙初)가 일제와 국민당 군에 맞서 싸우다 희생된 열사로 유명하다. 일찌감치 마오 전 주석 집안과 가깝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배경 덕이었다. 장성해서는 자연스럽게 마오 전 주석의 맏며느리도 됐다.

그러나 고인은 결혼 1년 남짓했을 무렵인 1950년 10월 남편 마오안잉과 생이별을 하는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다. 인민지원군에 자원 입대한 그가 펑더화이(彭德懷) 사령관의 러시아어 통역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됐기 때문이다. 생전 회고에 따르면 당연히 고인은 사령관의 옆에 안전하게 딱 붙어 있다고 알려온 남편의 무사귀환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참전 한달만인 1950년 11월에 마오안잉은 고인의 기원도 헛되게 미군 공습으로 28세의 나이에 전사하고 말았다. 당시 펑더화이는 그의 시신을 중국으로 운구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마오 전 주석에게 보고했다고 한다. 마오 전 주석은 그러나 이 제의를 단호히 거부하고 “다른 전사자와 똑같이 대우하라”며 아들이 북한에 묻히도록 했다. 마오안잉의 묘지가 지금 평안남도 회창군의 ‘중국 인민지원군 열사능원’에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남편의 전사 이후 류 여사는 시아버지 마오 전 주석의 배려로 1955년부터 3년 동안 구소련의 모스크바대학에서 유학했다. 귀국해서는 번역 등의 일을 하다가 1961년부터 인민해방군에서 본격적으로 통역을 하기 시작했다. 1962년 2월에는 시아버지의 강력한 권유로 당시 공군대학의 교수인 양마오쯔(楊茂之)와 결혼, 2남 2녀를 낳고 비교적 무탈하게 살았다. 고인은 그럼에도 장남의 이름을 샤오잉(小英)으로 지은 것에서도 알 수 있듯 평생 동안 전 남편을 잊지 않았다고 한다. 기회 있을 때마다 북한 회창도 방문하고는 했다.

고인의 별세는 마오 전 주석 가문의 2대도 곧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말해준다. 현재 뒤를 이을 3대 직계로는 둘째 아들 마오안칭(毛岸靑)의 독자인 마오신위(毛新宇·52) 인민해방군 소장(준장)이 있다. 그 역시 독자를 둔 것으로 볼 때 마오 전 주석 가문은 갈수록 자손이 귀해진다고 해야 할 것 같다.
홍순도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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