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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산: 용의 출현'(이하 '한산')에서 배우 박해일은 지장(智將) 이순신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말이 없는 대신 생각이 깊고, 온화하지만 적들 앞에선 부러지지 않는 강직한 나무 같은 이순신을 말이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해일은 인터뷰 시작 전 의자에 앉지 않고 올곧이 선채로 이순신 장군이 썼다는 시를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그는 "시도 쓰는 장군님이었다"며 "7년의 전쟁을 버텨내기까지 어마어마한 스트레스가 있었을 거다. 그럴 때마다 술도 마시고 활을 쏘고, 그러다 시까지 썼다고 한다. 굉장히 인상적이다. 수양을 많이 쌓은 선비 같은 이순신이 와닿았다"고 말했다.
시를 읊던 박해일의 모습은 마치 '한산'의 이순신을 보는 느낌이었다. '한산'은 명량해전 5년 전, 이순신 장군과 조선 수군의 한산해전을 그린 전쟁액션 대작이다. 김한민 감독이 해전에 성격의 따라 3부작으로 나눴는데, 그 중 이번 '한산'에선 1592년의 한산해전을 다뤘다. 용맹하고 강렬한 모습이 아닌, 지혜로운 장군의 모습을 표현했다.
"이순신 장군을 다룬 드라마나 영화, 저서들이 많아요. 당시의 시대가 요구하고 바라는 부분을 부각시킨 측면이 있죠. 지금 시대에서는 '한산'의 이순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수양을 쌓은 선비, 그 캐릭터를 박해일이란 배우로서의 기질로 표현하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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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은 오랫동안 사랑 받은 위인이다. 게다가 17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해 국내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는 '명량'(2014)에서 최민식이 보여준 이순신 때문에 부담도 컸다.
"사실 이순신 장군 역할을 한다는 것에 부담이 컸습니다. 그런데 그 부담감이 촬영을 하면 할수록 도움이 됐어요. '명량' 제작진이 거의 '한산'으로 옮겨왔어요. 당시엔 컴퓨터그래픽(CG) 대신 실제 바다에서 촬영을 했잖아요. 우린 훨씬 효율적이고 나은 환경이 됐죠. 그래서 그 환경 안에 더 좋은 결과물을 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박해일은 아이러니하게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이 도움이 됐다고 했다.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숙소에서 시나리오나 콘티를 볼 때도 의자에 앉지 않고 양반다리를 하고 바닥에 앉았다. 이순신 장군이 그랬던 것처럼 끝없이 주위를 산책하며 마음을 다독였단다.
"이순신 장군은 흠결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어요. 수군들에게 기운을 북돋아주면서 각자 역할을 해내게끔 했어요. 본인은 한 발자국 떨어져서 바라볼 줄 알았죠. 지금 시대에서 가장 어울리는 수장다운 모습인 것 같았어요. 사실 지금 세계 어디선가도 전쟁이 일어나고 있잖아요. 과거의 이야기로만 치부할 수 없죠. 그래서 우리가 다 아는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가 또 나오고 또 나오는 것 같아요."
'박해일표 이순신'에 대한 궁금증은 관객의 발걸음으로 이어졌다. '한산'은 개봉 이후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다.
"이순신 장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아직 버겁고 조심스러워요. 그래서 '한산'을 얼마나 봐줬으면 좋겠냐는 질문에도 대답하기가 어렵고요. 하지만 유독 올해 이색적인 풍경이 있잖아요. 대작들이 연달아 관객들을 만나고 있죠. 다시 예전처럼 다양한 작품을 재밌게 즐겨줬으면 해요. '한산'도 그렇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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