봐주기식 제재 이후 또 횡령사고 반복
전문가 "금융당국 차원 강력 조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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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2022년에 일어난 700억원대 횡령사고 관련해 금융당국은 '기관경고'와 과태료 처분을 내린 바 있다. 금융권에선 사고 금액에 비해서나, 수년간 내부통제를 하지 못한 은행에 대해 매우 약한 제재였다고 보고 있다. 이처럼 낮은 수준의 제재 이후, 5개월만에 우리은행에선 180억원 규모의 횡령사고와 수백억원 규모의 부정대출 사고가 발생했다. 또 350억원 규모 부정대출 사고도 드러났다. 특히 이 사고와 관련해 우리은행이 금융당국에 보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금융감독원은 보고 누락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다.
전문가는 더 이상 내부통제나 금융사고 재발 방지 노력을 은행 측에 맡기지만 말고, 금융당국 차원에서 다른 사안보다도 더 시급하고 강력한 조치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2023년 7월부터 올 5월까지 우리은행 김해금융센터에서 발생한 180억원 횡령사고에 대한 제재 결과까지 수개월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금감원이 이와 관련해 우리은행을 대상으로 현장점검을 진행한 시기는 6월 중순부터 7월 중순까지로 현재 제재 조치안 작성 중에 있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현재 조치안 작성 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검사가 끝난 이후 제재 결과가 나오기까지 6개월 이상 걸릴 수 있다"면서 "은행법 등 법률적 쟁점에 따라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고 밝혔다. 제재결과에 앞서 금감원의 현장검사 결과가 나와야 하지만 여전히 깜깜무소식이다. 앞서 금감원은 2022년 4월부터 6월까지 우리은행의 700억원 횡령사고에 대한 현장검사를 진행했으며 검사결과를 한 달 만에 발표했었다. 늦장대응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현장검사 결과에 따라 제재를 정할 수 있는데 지난번 횡령사고에 대해 솜방방이 처분을 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는 만큼 이번에는 강도를 높여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금감원은 올 1월에야 2022년 우리은행 700억원 횡령사고와 관련해 기관경고 및 과태료 8억7800만원 부과로 조치했다. 사고자에는 정직 처분이 내려졌고,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임원 및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제재는 없었다. 이후 5개월 만에, 우리은행에선 180억원대 횡령사고와 350억원 규모 부정대출이 터진 것이다.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논란을 의식한 듯 이복현 금감원장은 우리은행의 이번 횡령사고와 관련해 본점에 책임을 묻겠다면서 보다 수위 높은 제재를 예고한 상황이다. 이 원장은 "일선에서와 본점 여신, 감사에서의 3중 방어 체계가 작동했는지 확인하고 있다"며 "그중 본점에서 문제가 있다면 책임을 엄하게 묻겠다"고 발언했다.
금감원장의 강한 어조에도 불구하고 우리은행은 '본점 문제'에 대해 대립각을 보이고 있다. 최근 금감원이 우리은행의 350억원대 부정대출을 검사한 결과를 발표하자, 우리은행은 즉각 이에 반박하는 자료를 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올 초부터 부실대출건을 인지하고 검사를 진행했으나, 금감원에 보고할 사항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특히 우리은행이 내놓은 반박자료를 두고 은행권에서는 이례적인 상황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금감원의 조사결과에 반박자료를 공개적으로 내놓은 곳은 사실상 없었다. 또 반박자료에는 영업점장 전결여신으로 인한 본부장의 부당한 지시는 본사가 모를 수밖에 없다는 점, 대출 취급 전 특정인에 대한 지배관계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 등 은행 본점 차원의 책임은 사실상 없다는 주장이 담겨있다.
일각에선 우리은행의 이례적인 자료 발표 배후에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있는 게 아닌지 점치고 있다. 임 회장이 전임 금융위원장 출신인 만큼, 금감원 조사 결과에 은행이 사실상 정면으로 반박하며 본점 책임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나선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다.
본점 차원에서의 방어체계 부실 문제가 드러나게 된다면 이번 횡령사고건은 단순히 기관경고 수준에 그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봐주기식' 제재 조치 이후 또다시 금융사고가 발생한다면 금감원도 책임을 회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과거에 횡령사고가 난 은행에 계속적으로 사고가 일어났다는 점은 은행 내부에서도 획기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면서 "금감원이 우리은행에 적극적인 개선 요청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기관경고' 수준의 제재는 사실상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것과 다름없다"면서 "미국의 월드컴이나 엘론처럼 CEO에 책임을 물어야 금융사고 재발률이 줄어들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