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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정오 무렵께 베트남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에 도착한 시 주석을 맞이하러 나간 것은 르엉 끄엉 베트남 국가주석이다. 베트남의 서열 2위이자 '국가원수'인 국가주석이 공항까지 직접 영접을 나온, 전례 없는 '파격적 예우'였다.
과거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73년 베트남을 찾았던 쿠바의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를 오늘날 베트남의 전신인 베트남 민주공화국(북베트남)의 제1비서·국회의장·총리 등 주요 지도자들이 공항에서 영접한 적은 있지만, 오늘날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의 외교사에선 이번 끄엉 주석의 공항영접은 가장 파격적인 예우다. 지난 2023년 9월 베트남을 찾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영접한 것은 레 호아이 쭝 공산당 중앙대외관계 위원장이었다.
14일 도착한 시 주석은 베트남 주요 지도부들과 회동했다. 하지만 이날 회동 소식을 다룬 중국 언론과 베트남 언론의 보도는 '톤'이 달랐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시 주석이 베트남 지도부들과 만나 발언한 "중국과 베트남은 경제 세계화의 수혜자로, 전략적 의지(定力)를 높이고 일방적 괴롭힘 행위에 함께 반대해야 한다"며 "글로벌 자유무역 체제와 산업·공급망 안정을 수호해야 한다"는 내용을 전했다. 중국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압박을 '일방적 괴롭힘'으로 규정해 온 만큼, 시 주석은 베트남 지도부에 미국의 관세에 대한 공동 대응을 촉구한 셈이다.
하지만 해당 내용은 년전(인민)·뚜오이쩨·VTV 등 베트남 주요 언론에는 보도되지 않았다. 관세 협상 중인 미국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조치로 풀이된다. 베트남 측의 보도는 양국 당·정부의 고위급과 국민간 교류 확대, 철도 등 산업·기술 협력 강화 등에 초점을 맞췄다. 이날 시 주석과 럼 서기장은 회담 이후 45건의 협력 문서에 서명했지만 안건과 세부적인 내용도 공개되지 않았다.
15일 시 주석과 끄엉 주석의 회담에 대해서도 베트남 언론들은 "양국이 풍부한 성과와 중요한 공통 인식을 도출해냈다"며 "다양한 분야에서 실질협력 수준을 높였다"고 보도했다. 양국 수교 75주년, 시 주석의 4번째 베트남 방문, 럼 서기장의 중국 국빈방문 이후 1년도 되지 않아 시 주석의 답방이 이뤄졌다는 점에 초점을 맞췄지만 역시 관세 등 미국과 관련된 사안은 언급되지 않았다.
시 주석은 15일 열린 '베트남-중국 철도 협력 메커니즘' 출범식에 럼 서기장 팜 민 찐 베트남 총리와 함께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쩐 홍 민 베트남 건설부 장관은 중국 측과 정부 차원의 국제 조약 2건·공적개발원조(ODA) 자본에 관한 양국 정부간 협정 2건과 부처급 협정 등 7건의 문서에 서명했다. 베트남 정부 관계자는 "베트남과 중국을 잇는 철도 프로젝트가 탄력을 받을 것"이라 평가했다. 중국은 해당 철도 프로젝트에 기술적 지원을 제공할 것으로 알려졌다. 차관 지원과 관련한 사항은 즉시 확인할 수 없었다.
베트남은 이날 중국상용항공기공사(COMAC·코맥)의 항공기 운항도 승인했다. 베트남의 저비용항공사(LCC)인 비엣젯이 베트남에선 최초로 코맥의 C909 항공기를 국내선 하노이~꼰다오, 호치민시~꼰다오 노선에 투입한다.
시 주석의 베트남 방문을 주시한 서방 외교관은 15일 아시아투데이에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베트남이 대나무외교·중립외교의 기조를 재확인시키는 것 같다. 미국을 자극하지 않고, 그렇다고 중국이 서운하게 만들지 않으면서도 실리를 챙기고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외교관은 "하지만 조심스럽게 말하자면 중국의 입장에선 베트남의 (관세 문제에 대한) 반응이 (적극적이지 않아) 조금은 아쉬울 수도 있지 않겠나 싶다"고 덧붙였다.
베트남 방문을 마친 시 주석은 15일 오후 말레이시아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말레이시아로 향하는 시 주석은 찐 총리가 전송했다. 말레이시아로 향한 시 주석은 이후 캄보디아도 방문한다. 화교가 많은 말레이시아와 동남아시아의 대표적인 친중국가인 캄보디아인만큼 대미 공동전선을 펼치려는 시 주석의 행보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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