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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답을 찾다] 사라지는 풍경 기록...구도심에 청년 일터를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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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김남형 기자

승인 : 2025. 04. 21. 17:28

노인 많은 구도심에 청년 중심 협동조합…기록으로 잇는 마을 변화
225명 고용·38건 창업 지원…'라일락 프로젝트' 자립 모델 확산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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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글협동조합이 대구 지역 원로 예술인의 생애와 예술관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빛글협동조합
대구의 대표적 구도심, 남구. 대구에서 노인 비율이 가장 높은 이곳은 오랜 시간 쇠퇴와 고립의 상징처럼 여겨져 왔다. 하지만 지금 남구 이천동 한켠에서는 다른 흐름이 뚜렷하게 자리 잡아가고 있다. 방송작가와 사진가, 영상작업자들이 뜻을 모아 만든 한 마을기업이 지역의 오래된 풍경과 사라져가는 이야기를 차곡차곡 기록 중이다.

이 마을기업의 이름은 '빛글협동조합'이다. '세상에 빛이 되는 글'이라는 뜻처럼 이들은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지역 청년들과 함께 콘텐츠를 만들고 수도권 편중 현상에 맞서 안정적인 디지털 일자리를 일구고 있다. 이러한 활동을 바탕으로 지역에 뿌리내린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도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

빛글은 2017년 협동조합으로 설립됐고, 2019년 행정안전부 마을기업으로 첫 지정됐다. '젊은 남구 만들기'를 모토로 내세운 빛글은 사진과 영상, 글과 디자인으로 지역을 기록하는 작업에 집중해 왔다.

초기에는 무료 사진·영상 교육으로 마을 주민과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스마트폰 촬영법부터 영상 제작까지 배운 어르신들이 직접 촬영한 사진들은 전시로 이어졌다. '주머니 속의 카메라', '이천 시간여행자' 등과 같은 마을기록 전시는 주민들의 호응을 이끌어냈고 '기록'은 주민 참여로 이어지며 공동체를 다시 연결하는 수단이 됐다.

이후 활동은 공공 콘텐츠 사업으로 확장됐다. 대구시 원로 예술인의 사진·영상 기록물 제작을 비롯해 간송미술관 건립 과정을 담은 기록 작업, 재외 한국문화원 전시 홍보영상 등 전국·해외 프로젝트를 수주하며 사업 안정성과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2024년엔 행안부 '모두애 우수마을기업'으로 선정됐고 올해에는 경주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백서 영상을 제작 중이다.

박연정 빛글 대표는 대구 원로 예술인의 생애를 담은 기록 작업을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로 꼽는다. 그는 "빛글이 지금 이 자리에 서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됐다"며 "질문 수십 개를 정리하고 인터뷰에 맞춰 메이크업과 조명까지 하나하나 준비했다. 그분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지역 문화이자 역사였다"고 말했다.

영상은 단순한 다큐멘터리에 그치지 않는다. 숏버전 클립과 질문별 클립 등으로 세분화해 연구자는 물론 일반 관람자도 쉽게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생전에 기록을 남기고 작고한 예술인도 있어 이 작업은 빛글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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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글협동조합이 디지털 전환 혁신 일자리 사업을 통해 청소년 대상 콘텐츠 제작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빛글협동조합
빛글은 콘텐츠 제작 외에도 지역 청년과 청소년을 위한 교육·고용 사업을 함께 펼쳤다. 고용노동부의 디지털 전환 혁신 일자리 사업을 운영하며 영상·디자인 교육을 제공하고 이를 바탕으로 225명의 청년 고용과 38건의 창업을 지원하기도 했다. 박 대표는 "도시재생사업으로 사라져가는 남구의 모습을 기록하고,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지역 청년들의 생산 활동을 통해 수도권 편중화 현상에 맞선 안정적인 디지털 일자리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빛글은 현재 조합원 11명과 준조합원 45명 가운데 상당수가 20~30대 청년으로 구성돼 있으며, 단순한 콘텐츠 제작을 넘어 지역 청년들의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모색하는 실험도 이어가고 있다. 박 대표는 보호종료 청년들을 대상으로 사진·영상 교육을 통해 콘텐츠 제작팀을 구성하고, 장기적으로는 이들이 독립적인 기업이나 또 다른 마을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라일락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다.

박 대표는 "이 프로젝트가 잘 자리 잡는다면 콘텐츠 기반의 청년 자립 모델로 전국에 확산될 수 있을 것라고 생각한다"며 "그들이 훗날 또 하나의 마을기업을 만들 수 있다면, 그게 빛글의 진짜 성과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김남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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