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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작인 소설 '이방인' '페스트' 등으로 최고의 작가 반열에 올랐던 알베르 카뮈가 1948년 내놓은 희곡 '계엄령'은 20세기 초 스페인의 작은 마을 카디스에서 한 독재자가 등장해 계엄을 선포하고 도시를 장악했다 시민의 저항에 물러나는 과정이 기본 줄기를 이루고 있는 작품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소련에서 시작된 공산주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출간됐지만, 작품의 배경이 왜 '쓰러지는 도미노처럼' 공산화가 빠르게 진행되던 동구권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서유럽 국가인 스페인이었냐는 평단의 싸늘한 비판 속에 큰 주목은 받지 못했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국내에서도 이 작품은 최근까지 한국어 번역본이 두어 본밖에 없을 정도로 일반 독자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카뮈가 이 작품을 쓰면서 중요하게 본 것은 '철의 장막' 뒤편에서만이 아닌 우파인 프랑코 정권 치하의 스페인이나 그의 조국 프랑스에서도 '전체주의'로 대변되는 국가 폭력과 독재가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서유럽인들이 두려워했던 소련 등 공산국가가 아니더라도 시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전체주의는 이른바 자유진영에 속하는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다. 5.16, 12.12로 불리는 군부 쿠데타로 정치군인이 전면에 등장했던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다.
희곡 계엄령의 역저자는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 이름(계엄령)이 야음을 틈타 각종 매체를 통해 언명되는 순간 어찌할 수 없이 뜬눈으로 밤을 새웠고, 그날 이후로도 한동안 무력감 속에 일상을 보내야만 했다"며 이 작품을 지난해 12월 중순 출판사로부터 갑작스레 의뢰받아 작업(번역)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후기(後記)에 소상히 밝히고 있다.
출판사 측도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며 누려왔던 자유를 언제든 잃게 될 지 모른다며 '느닷없는' 출간 배경을 설명했다. 이데올로기가 교묘하게 내세운 계엄령 하에서 인간이 겪었던 지속적 억압과 이에 따른 혐오의 감정은 '지나간' 역사가 아닌 '현재 진행형'의 역사일 수 있다는 것이다.
원저자인 카뮈가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의도와 최근 5개월 동안 혼란을 겪은 후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품을 수밖에 없는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전체주의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했던 쓰라린 과거는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독재가 원하는 것은 무지와 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