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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인사이트] PBR(주가순자산비율) 낮다고 벌주는 나라, 기업이 떠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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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심의실

승인 : 2025. 05. 18. 17:58

신현한
신현한 (연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전 증권학회 회장)
최근 상속세법 개정을 둘러싼 논의는 자본시장과 기업 경영환경에 중대한 시사점을 던진다. 특히 "PBR(주가순자산비율)이 낮은 기업이 상속세를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기업가치를 낮게 유지한다"는 주장과 이를 방지하기 위해 "상속세 과세 기준을 주가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바꾸겠다"는 방침은, 단순히 세법의 기술적 변경을 넘어 경제 전체의 유인구조를 근본적으로 흔들 수 있는 문제다.

인간의 경제적 행동은 기본적으로 동기 부여에 의해 결정된다. 학생이 열심히 공부하는 이유는 시험을 잘 보고 좋은 대학에 가고, 나아가 안정적이고 수입이 좋은 직장을 얻어 더 나은 삶을 살겠다는 기대 때문이다. 물론 공부의 궁극적인 목적은 지식의 축적이나 사회적 기여일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이러한 철학적 이상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유인을 따른다. 그런데 어느 날 공부를 열심히 해도 놀던 친구와 똑같은 성적표를 받고, 똑같은 대학에 가며, 똑같은 직장을 얻는 세상이 된다면 누가 자발적으로 공부에 몰두하겠는가. 공부하지 않으면 체벌을 하겠다는 채찍만 남은 상황에서, 진정한 의미의 노력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자유 사회에서 채찍만으로 동기를 부여하려 한다면, 그 사회는 이미 자유를 포기한 사회일 것이다.

이런 맥락은 기업 경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기업인은 가족의 미래를 위해 기업을 키운다. 이는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지극히 인간적인 동기다. 그런데 기업을 성공적으로 성장시킨 결과가 오히려 '부정적' 평가를 받고, 그에 따라 세금이라는 형식으로 대부분의 부(富)를 환수당하는 구조라면, 과연 어떤 기업인이 장기적인 투자를 감수하고 사업을 확장하려 하겠는가.

현재 논의되고 있는 상속세 개편안은 이런 기업인의 동기를 심각하게 훼손한다. 상속세 과세 기준을 현행 주가에서 다른 기준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는 겉보기에는 시장 왜곡을 방지하려는 합리적 노력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기업가 정신을 옥죄는 규제로 작용할 수 있다. 기업가가 기업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추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그 원인이 단순한 탈세 목적만은 아닐 수 있다. PBR이 낮은 것은 기업의 구조적 투자 문제, 산업 전망, 불확실성 회피 성향 등 복합적인 요소의 결과이며, 이를 법적 페널티로 규정하는 접근은 지나치게 단순화된 인식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상속세율(최고 60%)을 적용하고 있다. 많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이 상속세를 폐지하거나 실효세율을 낮춘 것과 비교해 볼 때, 이러한 세제 구조는 '부자 감세' 논란 이전에 글로벌 경쟁력 측면에서 심각한 제약 요인이 되고 있다. 창업주가 수십 년간 키워온 기업의 2세가 상속세를 마련하지 못해 경영권을 포기하거나 기업을 매각해야 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이는 개인의 손실을 넘어 국가 자산의 유출로 이어진다. 실제로 다수의 기업인들이 상속세 회피를 위해 해외 이민이나 해외 법인 이전을 택하고 있으며, 이는 경제에 장기적인 공백을 남긴다.

상속세의 문제는 단순히 세율의 높고 낮음을 넘어선다. 그것은 자유 시장경제의 본질적 작동 원리와 유인의 문제다. 좋은 기업이 존속하고, 그 기업이 세대를 이어 운영되며 사회에 기여하도록 만드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국민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집에 사는 것이 부도덕한 일이 아니라 노력의 결과로 인정받는 사회야말로 건강한 사회다. 그런 사회에서는 누구나 노력하려고 하고, 그것이 곧 사회의 성장으로 이어진다.

결국 정책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식으로 설계돼야 한다. 채찍이 아닌 당근으로, 억압이 아닌 동기로, 기업가에게는 기업가치를 올릴 이유를 제공해야 한다. 존경받는 기업인이 되는 것, 가족에게 성공의 결실을 물려줄 수 있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사회적 기여를 확대할 수 있는 구조, 그것이 기업가 정신을 보호하고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며 미래 세대에게 더 나은 기회를 열어주는 길이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신현한 (연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전 증권학회 회장)
논설심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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