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만한 게임이 없어 지루함이 밀려올 때, 새로운 게임을 찾지만 지갑 사정은 넉넉하지 않다. 그럴 때마다 등장하는 무료 게임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반갑다.
때로는 '무료'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며, 예상 이상의 만족감을 주기도 한다. 이번에도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떠도는 하이에나처럼 무료 게임을 찾아 스토브를 둘러보다가 비주얼 노벨 게임 '우리들의 4분 33초'를 발견했다.
지난 2월 출시 이후 처음으로 무료로 풀렸다. 게임을 처음 봤을 때는 가볍게 즐기는 평범한 비주얼 노벨을 생각했다. 그러나 게임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예상보다 훨씬 무겁고 진중한 전개와 방대한 분량에 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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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들의 열연 덕에 게임 중에 소름이 돋을 때도 있다. /인게임 캡처
'우리들의 4분 33초'는 선택지 없는 단일 루트의 비주얼 노벨이다. 멀티 엔딩을 내세운 최근 작품들과는 다르게, 하나의 이야기만을 정면으로 밀고 나간다. 그 덕분에 스토리는 오히려 더 단단하고 몰입도도 높다. 확실한 선택과 집중이 주는 힘이 있다.
게임 분량도 만만치 않다. 엔딩까지 최소 8시간 이상이 걸린다. 스토리의 밀도가 높고 몰입감이 뛰어나,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시간을 훌쩍 넘기게 된다.
또한 주인공을 제외한 모든 등장인물은 풀 보이스 더빙으로 구현됐다. 성우들의 연기력도 뛰어나 몰입도를 한층 끌어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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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 어두운 묘사들이 많이 나온다. /인게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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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등장인물들은 조금씩 결핍이 있다. /인게임 캡처
처음엔 아련한 러브 코미디를 기대하게 만들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왕따, 폭력, 성폭력, 살인 등 무겁고 어두운 테마를 다룬다. 15세 이용가이지만, 수위 높은 묘사가 포함되어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결핍을 안고 있다. 주인공 '서성한'은 과거의 충격적인 사건으로 대인기피증을 겪고 있고, 히로인 '유수아'는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다. 다리 위에서 투신을 시도하다가 주인공에게 구조되며 스토리가 시작된다. 이외에도 성격적 결함이나 심리적 문제를 가진 인물들이 여럿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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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점과 시간대를 넘나들며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인게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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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마지막에는 웃을 수 있을...까? /인게임 캡처
이들의 상처와 결핍,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이 스토리에 깊이를 더한다. 시점과 시간대를 전환하며 여러 인물의 시선으로 하나의 사건을 다루는 방식은 스토리를 입체적으로 만든다. 진실이 밝혀지고, 인물들이 서로를 이해해 가는 과정도 섬세하게 표현됐다. 엔딩을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 흡족한 마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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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림이의 턱은 다소 부담스럽다. /인게임 캡처
단점도 있다. 긴 분량 때문에 오랜 시간 집중력을 유지하기 쉽지 않다. 일부 캐릭터 일러스트도 아쉬움이 남는다. 대부분 매력적인 디자인이지만, '서아림' 같은 인물은 턱선이 지나치게 날카로워 위화감이 있었다.
완벽하진 않지만, 스토리의 힘이 단점을 덮는다. 정가로 구매했어도 아깝지 않은 작품인데, 6월 8일까지 스토브에서 무료로 구매할 수 있다.
지금 당장 플레이하지 않더라도 장바구니에 담아두길 추천한다. 여유로운 날, 느긋하게 몰입하며 즐길 수 있는 ‘일용할 양식’ 같은 게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