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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인사이트] ‘제주SK FC’, 이름을 바꾼 것이 아니라 책임을 드러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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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찬 선임 기자

승인 : 2025. 06. 23. 10:47

구단명에 담긴 기업의 책임, 그리고 지역과의 밀착 의미
기업 중심 프로스포츠 구조 속, 팀과 지역, 기업이 맺는 새로운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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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월드컵경기장 외곽에 설치된 구단 브랜드 표지. 기업 정체성과 지역 상징이 공존하는 새로운 구단 아이덴티티를 표현한다. / 사진 전형찬 선임기자
아시아투데이 전형찬 선임 기자 = 2025년, 제주유나이티드가 '제주SK FC'로 이름을 바꿨다. 2006년, 부천에서 연고지를 옮기며 제주에 새롭게 둥지를 튼 이후 약 20년 만에 단행된 변화였다. 시즌 전반기를 마친 지금, 반 시즌 동안의 운영은 개명에 담긴 의미와 방향성을 실천하는 과정이었으며, 팀과 팬 모두가 새로운 이름 아래에서 점차 안착해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익숙한 이름이 사라진다는 아쉬움 속에서도, 이번 개명은 단순한 브랜드 교체를 넘어 구단 운영의 방향성과 철학을 더욱 명확히 드러내는 선택이었다. '제주SK FC'라는 이름에는 구단의 방향성과 운영 철학, 그리고 팀의 정체성을 더욱 분명히 보여주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스포츠팀의 이름은 단순한 명칭을 넘어, 그 구단이 누구에 의해 어떤 가치로 운영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사회적 언어다. 그런 점에서 이번 개명은 팀의 존재 기반과 운영 주체를 보다 선명하게 드러낸 조정이다. 팬의 입장에선 이름이 바뀐 것이지만, 구단의 입장에서는 운영의 책임을 명확히 밝히는 '책임의 언어'가 전면에 나선 셈이다. 팀 이름을 바꾼 것이 아니라, 그동안 지켜온 운영 철학과 책임의 무게를 명시한 것이다.

◇ SK와 함께한 20년, 기업의 장기 운영이 만든 안정성

제주유나이티드는 연고지를 이전한 이후, 제주에서만 20년 가까운 역사를 SK그룹의 일관된 운영 아래 이어오고 있다. 이는 프로스포츠 산업의 맥락에서 보면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특히 한국 스포츠계에서는 삼성, 현대, 포스코 등 대기업들이 다수의 구단을 수십 년간 책임감 있게 운영해온 흐름이 정착돼 있으며, SK의 축구단 운영 역시 그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제주유나이티드는 이러한 기업 중심의 운영구조 속에서 제주라는 지역에 안정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지역 스포츠 문화 정착에 기여해온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연고지 이전이라는 민감한 전환 과정을 거치면서도 SK는 꾸준한 투자와 운영 책임을 유지했고, 지역사회와의 장기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제주도민의 팀'이라는 정체성을 형성해 왔다. 특히 최근 몇 년간은 관중 수 증가라는 지표를 통해 이러한 정착이 수치적으로도 입증되고 있다. 2025년 평균 관중은 7726명(2025년 6월 17일 기준)을 기록하며 8000명에 육박하는 수준까지 상승했다. 이제 '제주SK FC'라는 이름은, 그간의 운영에 담긴 책임을 이름이라는 형태로 구체화한 결정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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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 내 기자회견장 전경. 팀명과 로고가 일괄적으로 교체되며, 구단의 일관된 브랜딩 전략이 반영됐다. / 사진 전형찬 선임기자
◇ 이름 속에 담긴 구조의 현실

한국 프로스포츠는 본질적으로 기업 주도형 구조 위에서 성장해왔다. 특히 축구는 시민구단이라는 운영 모델이 병존하고 있긴 하지만, 재정적 자립이나 마케팅, 시설 인프라 측면에서는 여전히 기업 구단의 안정성이 높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구단 운영은 단순히 경기력 확보에만 그치지 않는다. 연간 수백억 원에 달하는 예산과 조직 운영, 유소년 시스템, 경기장 인프라까지 총체적인 투자가 필요한 사업이다.

K리그1에는 기업구단과 시민구단이 유사한 비율로 공존하고 있지만, 기업을 모체로 둔 구단들은 대체로 안정적인 재정과 인프라를 기반으로 성적과 운영 면에서 꾸준한 경쟁력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이는 기업의 지속적인 투자와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구단 운영이 팀의 성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방증으로도 읽힌다.

이처럼 기업이 중심이 되는 프로스포츠 구조 속에서 구단명에 기업명을 포함하는 것은 광고나 마케팅 효과를 넘어서, 운영 주체로서의 책임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구단의 지속가능성을 보여주는 신호이며, 오히려 팬에게 더 큰 신뢰를 줄 수 있는 구조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제주SK FC'는 '제주'와 'SK'라는 두 개의 고유 명칭을 나란히 병기한 방식으로, 지역 정체성과 기업 정체성을 조화롭게 담아낸 이름이다. 이는 특정 이해관계가 아닌, 기업과 지역, 구단이라는 삼자 간의 상호 신뢰와 공존의 구조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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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시내에서 만난 한 팬은 "SK가 전면에 나서며 지역과 함께하겠다는 의지가 더 분명해진 느낌"이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 사진 전형찬 선임기자
◇ 기업명이 정체성을 해친다는 편견

K리그뿐 아니라 국내 다른 종목에서도 기업명을 구단명에 포함한 사례는 오히려 일반적이다. 삼성 라이온즈, LG 트윈스,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대한항공 점보스 등 팀명에서 기업이 자연스럽게 떠오르지만, 이 팀들을 향한 팬들의 충성도는 매우 높다. 기업명이 팀명에 포함됐다는 이유로 팬들이 멀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그 기업이 어떤 방식으로 팀을 운영하느냐다. 지속적인 투자, 지역 사회와의 소통, 팬과의 상호작용은 팀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만들어내는 핵심 요인이다. 결국 팬심은 팀의 '이름'보다, 그 이름이 어떤 관계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 해외 팬들은 이름보다 역사를 본다

유럽이나 북미의 주요 스포츠 리그에서는 팀명에 기업명을 포함하는 일이 드물지만, 예외는 존재한다. 그리고 그 예외는 결코 팬들에게 외면받는 팀들이 아니다.

독일 분데스리가의 바이어 레버쿠젠은 제약회사 바이엘(Bayer)이 창단한 구단이다. 기업명이 포함된 팀명이지만, 팀을 'Werkself(작업팀)'라고 부르는 애칭에서 볼 수 있듯 기업 정체성은 팀의 문화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오히려 팬들은 바이엘이 팀의 역사적 기반이라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낀다.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번 역시 마찬가지다. 필립스(Philips)사가 만든 팀이며, 팀명 자체가 'Philips Sport Vereniging(필립스 스포츠 연합)'의 약자다. 팬들은 이를 지역과 기업, 구단이 함께 만들어 온 공동 정체성으로 인식하며, 단지 기업 마케팅 도구로 보지 않는다.

이러한 사례는 '기업명=상업성'이라는 단순한 공식이 항상 성립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름은 곧 관계의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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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단장된 구단 공식 로고와 벽면 디자인. 'JEJU SK FOOTBALL CLUB'이라는 명칭이 시각적으로 강조되며, 팀명 변경의 상징적 메시지를 전한다. / 사진 전형찬 선임기자
◇ 팀을 위한 기업, 지역을 위한 구단

SK는 단순히 구단을 유지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제주 연고 이후 꾸준히 도내 유소년 육성, 클럽하우스 건립, 지역 연고 이벤트, 사회공헌 사업 등을 통해 제주도민과의 실질적인 접점을 만들어 왔다. 단발성 홍보가 아니라 지속 가능하고 구조적인 지역 밀착 활동을 통해, 구단은 지역 사회 속에서 자연스레 정체성을 형성해왔다.

2000년대 중반만 해도 제주도는 프로스포츠의 사각지대에 가까웠다. 프로 축구단의 존재는 지역 주민에게는 낯설고 이질적인 것이었지만, 지금은 '제주도민의 팀'이라는 표현이 익숙할 정도로 프로축구가 지역 일상에 스며들었다. 이는 단순한 경기력 때문이 아니라, 구단과 기업이 함께 지역사회와 관계를 맺어온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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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경기에서 골을 넣은 뒤 환호하는 선수들과 이를 함께 즐기는 관중들. 평균 관중 증가 속에 지역사회와 팀의 연결이 한층 깊어지고 있다. / 사진 전형찬 선임기자
◇ '제주SK FC'라는 이름, 새로운 시대의 서막

이번 개명은 팀의 과거를 지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까지의 관계와 역사에 대한 정당한 명명(命名)의 과정이자, 그에 따른 책임 선언이다. 팬들이 오랫동안 불러온 '유나이티드'라는 이름이 사라졌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그 이름에 담긴 뜻, 즉 지역과의 '하나 됨'은 여전히 팀의 핵심 가치로 남아 있다. 다만 이제 그 의미가 더 명확한 주체성과 결합하여 팬과 더욱 깊이 소통할 준비를 마친 것이다.

'제주SK FC'는 단지 바뀐 이름이 아니다. 이는 제주 축구가 지역사회에 단단히 뿌리내렸다는 증거이자, 앞으로 이 팀이 어떤 책임을 안고, 어떤 관계를 형성해나갈 것인지를 보여주는 새로운 시대의 출발선이다.

프로스포츠에서 이름은 곧 태도다. 이름을 바꾼 만큼, 그 이름의 무게에 걸맞은 운영과 관계 형성이 뒤따를 때, '제주SK FC'라는 이름은 기업의 이름을 넘어 지역의 자산으로, 팬의 자부심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전형찬 선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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