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붕괴의 핵심 교훈, 공산당 통제력 강화 중요성
소련식 고립 회피, 미국 동맹 약화, '다중 동맹' 추진
마오쩌둥식 시간벌기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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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SJ은 이같이 전하고, 미·중 갈등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에 대해 고율 관세 부과 등 경제 공세를 펼치고 있지만, 시 주석은 냉전을 벌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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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北京)의 정책 고문들에 따르면 시 주석은 수년간 준비한 큰(grand) 전략을 가지고 미국과의 무역 협상에 임하고 있는데,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차 냉전 당시 소련이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대한 이해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고문들은 시 주석이 미국의 지속적인 경제·군사적 우위를 잘 알고 있어 직접적인 대결을 피하면서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경쟁에서 중국의 입지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은 어떤 면에선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부 장관의 비대칭 분쟁의 본질, '재래식 군대는 이기지 못하면 패배하지만, 게릴라는 지지 않으면 승리한다'는 분석에서 촉발한 일종의 게릴라전을 추구하고 있다고 WSJ은 분석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1971년 두 차례 중국을 방문해 1972년 2월 닉슨 대통령과 마오 주석 간 정상회담을 성사시켰고, 미·중이 1979년 공식적으로 수교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마오 주석부터 시 주석까지 모든 중국 지도자를 만난 유일한 미국인이라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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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업 집중 소련 경제정책 실패 교훈, 세계 시장 겨냥 모든 제품 중국 생산
시 주석이 소련 붕괴로부터 얻은 교훈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사회의 모든 측면에 대한 공산당 통제력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다.
시 주석은 2013년 1월 공산당 총서기가 된 직후 당 고위 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비공개 연설에서 '당은 그 권위에 대한 어떠한 도전도 허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로 소련 와해와 소련공산당 붕괴의 주요 요인으로 "이데올로기 영역에서 경쟁이 치열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등 종종 중국에 대한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신문은 알렸다.
아울러 소련 붕괴의 주요 교훈 중 하나는 경제다. 소련의 경제정책은 에너지·무기에 중점을 둔 중공업에 모든 걸 집중했는데, 중국은 모든 것을 생산, 미국의 무역·기술 규제에 맞서 중국 제품에 대한 세계 시장의 수요를 활용하면서 중국 경제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WSJ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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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력 증강 속 미국과 군비 경쟁 회피
또 다른 교훈은 지정학적 측면에서 소련식 고립을 피하는 것이다. 이에는 미국과의 동맹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한 국가가 한쪽 편을 선택하지 않고, 여러 글로벌 강대국과 협력하는 것을 촉진하는 중국식 '다중 결맹(동맹)'이 포함된다고 신문은 분석했다.
아울러 군사력 증강을 지속하면서도 미국과 군비 경쟁을 추구하지 않는 것도 시 주석의 핵심 전략이다. 중국의 공식 국방 예산은 지난 3년 동안 약 7.2% 증가, 경제 성장률을 상회하지만 국내총생산(GDP)의 1.5%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지난해 미국의 GDP 대비 국방비는 3.4%다.
시 주석은 고립된 동유럽 국가를 육성한 소련의 전략(playbook)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중국이 미국에서 분리될 필요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지만, 광역경제권 구상인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등을 통해 중국이 세계와 단절되지 않도록 세계 경제, 특히 저소득 국가들과 통합된 경제를 유지하는 데 힘을 쏟아왔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백악관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을 지낸 에번 메데이로스 조지타운대 교수는 "중국의 경제·외교정책은 모두 미국과의 장기적인 투쟁 쪽으로 방향이 정해져 있다"고 진단했다.
◇ 마오쩌둥 '교착 상태 전략' 이용 시진핑, 미국 추격 시간벌기 전략
시 주석은 마오쩌둥(毛澤東) 초대 중국 주석의 '강지(강持·양보 없이 맞서는 교착 상태) 전략' 사용해 미국의 압박이 관리 가능한 수준이 되고,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을 시간을 벌 수 있는 지속적인 균형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WSJ은 분석했다.
계간지 '차이나 리더십 모니터'의 편집장인 민신 페이(裴敏欣) 미국 클레어몬트 맥케나대 교수는 "중국 입장에서는 '전략적 교착 상태'가 가까운 미래에 가장 현실적이고 바람직한 결과"라며 "이를 달성하는 데 전략적 인내·자원 절약·전술적 유연성 모두가 중대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시 주석이 세계 힘의 균형이 필연적으로 중국에 유리하게 기울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며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고 공산당 기관에 충고한다고 베이징 고문들은 전했다.
중국 정부는 무역 협상 외에도 트럼프 행정부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정기적인 대화를 복원하길 원하고 있는데, 이는 시간을 벌기 위한 시 주석의 책략이라고 WSJ은 평가했다.
중국의 강대국 경쟁을 강화하려는 시 주석의 정책이 중국의 경제난을 더욱 악화시킬 위험이 있고, 공산당의 지휘 통제가 민간 부문 활동을 억압하고 있고, 특히 모든 것을 생산하려는 정책은 디플레이션 심화를 초래할 수 있지만, 이 모든 것은 시 주석에게 미국을 기진맥진하게 만들려는 장기적인 목표의 견딜만한 부작용일 수 있다고 WSJ은 평가했다.
1970년대 키신저 당시 국무장관의 선임 경제보좌관이었던 로버트 호매츠는 "시 주석의 목표는 기술적인 우위를 확보하고, 이 장기적인 경쟁에서 더욱 영향력 있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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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 중앙당교장 시절, 소련 붕괴 교훈 이념 붕괴, 정치적 통제력 상실 강조
시 주석의 소련과의 인연은 그의 인생 전체에 걸쳐 있다. 그는 마오 주석이 중국의 정치·경제·군사 체제에 대한 소련 모델을 홍보하는 캠페인을 시작한 1953년 탄생했다. 그의 부친 시중쉰(習仲勳) 전 부총리는 중국에 산업 기반이 거의 없던 1950년대 후반 러시아 모스크바를 방문, 산업 현장을 찾아 운영 방식과 기술을 배웠는데, 이는 어린 시절의 시 주석에게 깊은 영향을 미쳐 소련의 가치·역사·문화에 대한 뿌리 깊은 동경으로 이어졌다고 WSJ은 설명했다.
일부 중국공산당 내부자들은 시 주석의 '러시아 콤플렉스'가 너무 깊어서 1956년 소련에서 일어난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공산당 서기장 격하 운동에 대해 중국이 소련을 수정주의라고 비판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양국 간 냉각기가 거의 30년이 지나도록 흔들리지 않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소련이 1991년 12월 해체되고, 시 주석이 2000년대 후반 미래 권력으로 부상했을 때 그의 소련에 대한 시각은 변화했다. 2007~2012년 중국공산당 중앙당교 교장 시절 시 주석은 소련 붕괴의 주요 원인으로 이데올로기적인 붕괴와 정치적 통제력 상실을 거론하면서 이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종종 강조했다.
시 주석은 2012년 집권한 후 소련의 마지막 대통령인 미하일 고르바초프를 당을 버린 악당으로 묘사한 소련 종말 다큐멘터리 제작을 지시했다. 이는 소련 붕괴를 20세기 최대의 지정학적 재앙이라고 여러 차례 개탄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인식을 같이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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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중국의 냉전 연구는 중국이 소련과 비슷한 종말을 피할 수 있는 방법에 초점이 맞춰졌고, 시 주석은 중국을 아직 초강대국 충돌의 미국 경쟁국으로 보지 않았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1기 때인 2018~2019년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인 것이 기존 시각의 전환점이 됐다고 WSJ은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모토가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의 결의를 시 주석에게 보여줬다고 한다. 정책 고문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 전술에 종종 방심했던 시진핑 지도부는 냉전 재평가를 시작했고, 새로운 초점은 미국과의 냉전에서 싸우는 방법과 궁극적으로 승리할 수 방법에 관한 것으로 전환했다.
시 주석은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으로 미·중 관계가 거의 단절됐던 2020년 '쌍순환'이라는 신냉전 전략의 첫번째 주요 내용을 발표했다. 이는 중국에서 필요한 물품을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하는 전략으로 중국을 외부 충격, 특히 미국으로부터 잘 차단하기 위한 전면적인 조치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다.
이후 부주석 시절 여러 차례 만나 '라오펑유(老朋友·오랜 친구)'라며 친밀감을 표시한 조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대(對)중국 강경정책을 이어가자 시 주석은 미국과의 장기적인 갈등에 맞서 싸우겠다는 결심이 더욱 긴박해졌다고 한다.
이때 중국은 미국과 동등한 대우를 받길 원한다는 점을 더욱 단호하게 표명했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인 2022년 초 중·러 정부가 양국 우호 관계에 '한계가 없다'고 선언할 정도로 러시아와 결정적으로 더욱 가까워졌다고 WSJ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