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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필현 칼럼] 방첩사 해체, 안보의 마지막 보루 허무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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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7. 07.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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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필현 국방전문기자
이재명 대통령의 국민참여정부는 출범 한 달 만에 연착륙하며 국방개혁의 서막을 열었다. '파격'과 '분배'를 기치로 내건 이 정부는 국방부 장관에 5선 안규백 의원을 지명, 군사쿠데타 이후 이어진 고위 장성 출신 장관 관행을 깼다. 이는 문민통제를 강화하고 군 내부 혁신을 유도하는 상징적 변화다.

문민통제는 민주주의의 핵심 원칙으로, 국방은 국민 신뢰를 기반으로 한 공공 시스템이다. 이재명 정부의 인사 조치는 국방의 투명성과 국민참여를 강화하는 실험으로 평가된다. 국방개혁의 첫 단추는 꿰어졌다. 이제 그 개혁이 실질로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러한 가운데 국가 안보의 최후 보루인 방첩사(국군방첩사령부)를 두 동강 내겠다는 발상이 국정 개편안으로 지난달 19일 제시됐다. 정부는 방첩사의 수사 기능은 국방부 조사본부로, 첩보 기능은 합참 정보본부로 넘기고, 방첩사는 본래의 '방첩'만 하라는 것이다. 명분은 '민주적 통제'와 12·3 비상계엄 문건 사태에 대한 대응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상 방첩사의 해체다. 안보의 핵심 기능인 '첩보→수사→분석→대응'의 일원화 체계를 무너뜨리고, 조직 간 칸막이를 다시 세우겠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한민국을 겨누고 있는 북한의 공작 현실을 전혀 모르는 책상 위 행정일 뿐이다.

북한이 한국의 K-방산 핵심 기술 탈취를 위해 방산업체 종사자와 퇴직 군 기술자를 조직적으로 포섭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방·정보당국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간첩 사건 다수가 방산업체 임직원과 기술자 포섭 시도와 연계되었다.

지난해 국군정보사 군무원이 대북 첩보요원 신상과 위장 기업 정보를 중국 조선족 해커에게 유출, HUMINT 자산에 큰 타격을 입혔다. 2022년에는 육군 특수전사 대위가 '적 지도부 제거 작전' 기밀을 북한 해커에게 넘기려다 적발되었다. 2023년에는 방산부품 업체 연구개발팀장이 차세대 장갑차 및 유도무기 소재 기술을 북한 공작원에게 유출하려다 검거되었다.

정보당국은 북한이 드론, 미사일, 전자전 기술을 목표로 대남 공작을 벌이고 있다고 보고, 방산업계 보안체계와 인적관리 강화를 촉구했다.

방첩사는 실시간으로 3군의 정보 자산을 연동해 이들 다수의 위협을 사전 차단했다. 지금의 통합-정보-수사-사이버 대응 체계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들의 활동을 저지한 건 방첩사와 국정원의 긴밀한 공조였다.

이처럼 방첩사는 단일 체계 안에서 감지하고, 판단하고, 곧장 행동하는 속도전 조직이다. 기능을 분산시켜 버리면, 첩보를 수집한 뒤 수사기관에 공문을 보내고, 사이버 공격이 감지되면 다른 부서에 협조 요청부터 해야 한다. 그사이 적은 이미 침투를 마칠 것이다.

'기능 분리'는 실무를 모르는 정치가들이 탁상에서 내리는 결정이다. 방첩사의 존재 이유는 속도와 연결성이다. 지금도 보안조사 건수는 폭증 중이다. 2021년 224건이던 것이 올해 상반기에만 997건에 달했다. 위협은 급증하는데, 대응 조직을 줄이겠다는 것인가.

정부는 '12·3 사태'를 방첩사 개편의 명분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당시 여인형 사령관이 국회 진입을 지시했다는 의혹은 제기됐지만, 실제로 방첩사 장병들은 그 명령을 거부하고 5시간 만에 부대로 복귀했다. 이는 방첩사가 권력의 하수인이 아니라, 헌법과 군 윤리에 따라 움직이는 조직임을 증명한 사례다.

방첩은 본질적으로 비공개성과 독립성이 전제된 조직이다. 민주적 통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그것은 제도적 감시와 법적 절차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 기능 자체를 분산시키는 식으로 통제하겠다는 것은 위험한 정치 개입이다.

무엇보다 한국은 북한이라는 실존하는 적과 대치 중이다. 이스라엘이 이란의 감지를 피해 이란 핵시설을 정밀 타격한 최근 사례는 방첩 실패가 곧 국가 실패임을 상기시킨다. 하물며 북한은 실시간으로 사이버 공격을 감행하고, 공작원을 침투시키며, 드론 테러까지 모의하고 있다.

그런데 이 시점에 방첩사의 칼날을 무디게 만든다면, 그것은 적에게 "이제 공격하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방첩사는 군의 눈과 귀다. 보이지 않는 위협을 먼저 감지하고 차단하는 방패다. 그 방패를 내려놓는다는 건, 안보를 포기하겠다는 말과 같다.

지금 정부가 추진 중인 방첩사 개편은 정치적 프레임을 위한 안보 해체에 불과하다. 단기 지지율을 위한 선택이 장기 안보를 무너뜨려선 안 된다. 방첩사는 정치의 논리가 아닌, 국가 생존의 논리로 판단해야 한다. 군사 조직을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는 결정은 훗날 그 정치세력의 가장 큰 실책으로 역사에 남게 될 것이다. 국가는 공격보다 침투에 먼저 무너진다. 방패를 내리는 순간, 적은 곧 들어온다.

구필현 국방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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