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된 청년의 몸을 통해 사랑과 존재를 사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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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은 김현진. '오늘도 싸운다'로 제21회 고마나루국제연극제에서 대상을, 충남연극제에서 연출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으며, 사회적 통념과 인간 내면의 갈등을 극적인 언어로 풀어내는 작업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는 '기형'이라는 개념을 중심에 두고, 그것이 한 인간의 삶에 어떤 의미로 작용하는지를 탐색하려 한다.
주인공 석은 스물한 살이 되던 해, 샤워 도중 오른팔이 하나 더 자라났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사건은 그의 일상을 무너뜨리는 결정적 전환점이 된다. 세상의 시선은 곧 낙인이 되고, 그는 점차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은 채 고립된 존재가 된다. 작품은 여기서 더 나아간다. 석은 단순히 배제된 자, 사회의 주변부에 머무는 인물이 아니다. 그는 '죽기 전 꼭 한 번은 성관계를 경험해보고 싶다'는 지극히 인간적인 욕망을 품고 있으며, 그 욕망은 결코 외설이나 비극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이 사회가 너무나도 쉽게 포기해버린 '사랑받을 권리', '사랑할 권리'에 대한 역설적인 질문이 된다.
여러 병원을 전전하던 끝에, 그는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의사는 '석'에게 "오른팔이 두 개여서 좋은 점, 즐거운 점을 써오라"는 과제를 제시하지만, 그것이 실질적인 도움이나 위로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이 장면은 '치료'와 '돌봄'이라는 이름 아래, 개인의 고통이 얼마나 가볍게 다뤄질 수 있는지를 암시하는 장치처럼 보인다. '석'은 그렇게 '정신병원'이라는 이름의 감옥 속에서 자기 존재에 대한 물음을 되새김질한다. 그에게 다가오는 인물은 같은 병실의 '허', 그리고 허가 소개해준 여성 '이'다.
특히 '이'가 건네준 성경책은 단순한 소품이 아닌, 그의 세계를 전복시키는 도구이자 계시로 기능한다. 작품은 이 만남을 통해 인간 내면의 감정이 어떻게 뒤흔들릴 수 있는지를 섬세하고도 대담하게 포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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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의 즐거움'은 극단 풍덩이 제작을 맡았다. '풍덩'이라는 팀명처럼, 이들은 단순한 창작을 넘어 인간 존재의 본질과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깊이 있게 탐색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이번 작품 역시 단일한 메시지나 해석을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의적인 상징, 언어, 몸의 움직임을 통해 각자의 삶에서 떠오르는 기형의 이미지와 마주하도록 이끈다.
배우 이다운(석 역), 조영길(허 역), 고현지(이 역), 김정현(의사 역), 한경수(간호사 역), 전민규(화자1 역) 등 연극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해 온 실력파 배우들이 출연해 극의 밀도를 더하며, 이예찬이 목소리로 참여해 장면의 정서를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조명디자인 유예찬, 오브제디자인 이지형, 음악 918, 안무 하경수, 무대감독 김태영 등 창작진도 강력한 팀워크로 완성도 높은 무대를 준비 중이다.
공연은 평일 오후 7시 30분, 주말 오후 3시에 서울연극창작센터 서울씨어터 제로에서 열린다. 익숙한 서사의 틀을 해체하고, 불편할 수 있는 질문을 정면으로 던지는 이 작품은 지금 우리의 시선을 정지시킨다. 무엇이 기형인가. 그리고 우리는 과연 누구의 기준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기형의 즐거움'은 단지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그 이상이다. 그것은 외면하고 싶던 우리 자신의 욕망과 불안, 그리고 소외의 감각과 마주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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