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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삼아 연애마소’, 사랑이라는 말에 감춰진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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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찬 선임 기자

승인 : 2025. 07. 18. 08:00

19세기 프랑스 고전 희곡의 재공연
고백과 억제 사이, 감정의 미세한 진폭을 다시 무대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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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전형찬 선임 기자 = 사랑의 농담 속에 감춰진 감정의 진실을 탐색하는 고전 희곡 한 편이 다시 무대에 오른다. 제46회 서울연극제 자유경연 부문에 선정되어 지난 5월 초연된 연극 '장난삼아 연애마소'가 관객들의 호응에 힘입어, 오는 24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성북미디어문화마루 4층 꿈빛극장에서 재공연된다. 이번 무대는 서울특별시와 서울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아, 서울연극협회 주최, 서울연극제 집행위원회 주관으로 진행된다.

작품은 19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극작가인 알프레드 드 뮈세(Alfred de Musset)의 동명 희곡을 원작으로 한다. 뮈세는 당대 문단에서 독립적인 위상을 지닌 작가 조르주 상드(George Sand)와의 격정적인 사랑과 이별을 겪으며, 그 경험을 문학으로 형상화했다. 이들의 관계는 단순한 연애를 넘어 문학적 영향까지 주고받으며, 각자의 작품 세계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상드는 자신의 회고록 '내 삶의 이야기(Histoire de ma vie)'에서 "그는 나를 신처럼 사랑했고, 나는 그를 아이처럼 사랑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끝까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회상하며, 감정의 불균형이 낳은 갈등을 담담히 되짚는다.

반면 뮈세는 자전적 소설 '한 젊은이의 고백(La Confession d'un enfant du siecle)'을 통해 실연의 상처와 도덕적 무기력, 시대에 대한 환멸 등을 고백 형식으로 풀어냈다. 그가 상드에게 보낸 편지 중 "당신이 입을 열지 않아도, 나는 당신의 말에 상처받는다"는 문장은, 두 사람 사이에 얽힌 감정의 농도를 엿보게 한다.

이러한 실존적 연애의 경험은 희곡에도 일정 부분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 1834년에 발표된 '장난삼아 연애마소(On ne badine pas avec l'amour)'는 상드와의 관계 직후 집필된 작품으로, 비평가들은 이 연극 속 인물들-특히 카미유와 페르디캉-에게 두 사람의 감정적 그림자가 반영되어 있다고 해석해왔다. 동시대 평론가 외젠 플랑슈(Eugene Planche)는 '사랑으로 장난치지 마라'는 부드러운 말투 아래 복수와 진심이 교차하는 극이라 평하며, 이 작품이 단순한 연애극을 넘어 감정의 위선과 진심의 탐색을 시도한다고 분석했다.

'장난삼아 연애마소'는 장난처럼 시작된 말과 행동이 어떻게 감정의 진실을 드러내고, 때로는 관계를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이끄는지를 고전 희곡의 구조 속에 담아낸 작품이다. 고백과 거리두기, 표현과 억제 사이에서 펼쳐지는 감정의 미세한 진폭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 하는 질문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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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프로젝트그룹 낙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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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프로젝트그룹 낙타
이번 무대는 2019년 창단된 젊은 창작집단 '프로젝트그룹 낙타'가 제작을 맡고, 김남언 연출이 극 전체를 이끈다. 프로젝트그룹 낙타는 "사막 같은 환경 속에서도 낙타처럼 묵묵히 초록빛 미래를 향해 걷겠다"는 태도로, 제도적·경제적으로 척박한 창작 환경 속에서도 실험적인 작업을 지속해온 단체다. 이번 재공연 역시 그 철학이 반영된 무대로 주목된다.

극의 줄거리는 간명하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의 결은 섬세하고 복합적이다. 사촌 남매인 페르디캉과 카미유는 학업을 마치고 남작의 저택으로 돌아온다. 남작은 두 사람의 결혼을 기대하지만, 페르디캉은 적극적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반면 카미유는 거리감과 냉담함으로 응답한다. 처음엔 장난처럼 시작된 감정이 점차 진심을 건드리며, 감정의 오해와 자존심이 교차하는 복잡한 관계로 전개된다.

작품은 단순한 로맨스의 공식을 따르지 않는다. 사랑이라는 감정의 진위를 반복적으로 묻고 해체하며, 표현과 억제, 진심과 거리 두기 사이에서 인물들이 드러내는 미묘한 심리를 따라간다. 고전적 언어 구조 위에 현대적 감각이 더해진 이번 무대는, 시대를 초월한 감정의 흐름을 관객과 함께 성찰해보는 시간을 제안한다.

이번 무대에는 초연 당시 출연했던 배우들이 다시 참여해 완성도를 더한다. 페르디캉 역에 신유승, 카미유 역에 염서현, 남작 역에 신하진, 플뤼슈 부인 역에 김지혜, 브리댄느 신부 역에 이호준, 블라쥐스 선생 역에 이정희, 로제트 역에 손지인이 출연하며, 이선, 이세훈, 김하늘이 코러스로 참여해 극의 정서적 밀도를 다층적으로 구성한다. 특히 이호준, 이정희, 손지인은 각자의 배역과 더불어 코러스 역할도 함께 수행해 극의 구조적 완성도를 더할 예정이다.

무대는 양병환, 조명은 홍문화·신예정, 음악은 이빛나, 안무는 전소담이 맡았으며, 기획은 김아영, PD는 이경훈이 담당한다. 의상은 오현희, 분장은 김효정, 음향은 김태균이 참여해 시각과 청각을 아우르는 무대를 함께 완성해나간다.

공연은 총 7회차로 진행된다. 7월 24일(목)부터 31일(목)까지, 7월 28일(월) 휴무를 제외하고 운영되며, 평일은 오후 7시 30분, 주말과 마지막 공연일인 31일(목)은 오후 3시에 시작된다. 공연 장소인 꿈빛극장은 성북미디어문화마루 4층에 위치해 있다.

'장난삼아 연애마소'는 특정한 결론을 제시하기보다는, 사랑이란 과연 진지한 의무로만 존재해야 하는가, 혹은 가벼운 시작 속에서도 진심이 자라날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이 작품이 그려내는 감정의 스펙트럼은,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을 경험해온 우리 모두에게 다양한 여운을 남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올여름, 고전 희곡 한 편이 다시 한 번 관객의 마음을 두드린다.
전형찬 선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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