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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대로] “중국인 막아줘요” 울먹인 호주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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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7. 20.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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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욱 논설심의실장
논설위원들이 엮어가는 '여의대로(如意大路)' 칼럼난을 신설합니다. 다양한 현안에 분명한 목소리를 내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호주에서 특파원으로 근무하던 어느 날 주요 일간지 1면에 등장한 뉴스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집을 뒤에 두고 울먹이며 하소연하는 50대 여성의 사진을 내세운 뉴스의 내용은 대략 이랬다. 시드니 부동산가격이 급등해 덩달아 월세도 치솟아 곧 방을 빼야 한다는 호소였다. 새로운 형태의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일까. 사진 속 여성은 중국인의 과도한 부동산 구입을 막아달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중국인들이 마구잡이로 시드니는 물론 주요 대도시 부동산을 사들이는 바람에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고 거주하지도 않는 중국인들은 주택담보대출 상환을 위해 월세를 마구 올린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뉴스가 이어지자 호주 연방정부는 중국인 등 외국인의 부동산 매입을 제한한다는 발표를 했다. 중국인을 겨냥한 이 정책은 그러나 한시적인 것이었다. 부동산 시장이 침체하면 외국인의 부동산 구입 여건을 완화해 주고 부동산 시장이 과열 국면에 들어가면 다시 제한하는 식이었다. 그런 호주의 탄력적인 대(對)외국인 부동산투자 제한 정책이 이제 우리에게도 필요한 상황이 됐다.

정부는 강남을 중심으로 급등세를 나타내는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해 수도권과 규제지역 주택 담보대출 한도를 최대 6억원으로 제한하는 고강도 규제에 나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인들에 대한 규제는 전무한 상황이어서 오히려 외국인의 부동산 투자, 즉 투기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오죽하면 부동산시장에서는 요즘 '집주인은 외국인이고 한국인은 세입자가 됐다'는 푸념마저 나오고 있을까.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아파트·오피스텔 등 집합건물을 매수한 외국인은 전년(1만2031명) 대비 13.6% 증가한 1만3615명에 달했다. 올 들어 지난 6월 누적 기준으로도 외국인 매수자가 6500명을 넘었다. 이 가운데 4773명은 수도권 매수자였다. 외국인 매수자 중 72% 4731명은 중국인이었다.

특히 평당 가격이 2억원에 달하는 반포 아파트의 경우 중국인 여유계층이 값을 마구 올려 매입에 나서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을 정도다. 중국인들은 사들인 아파트에 실제 살지도 않으면서 빈집 상태로 두고 가끔씩 와서 거주한다고 한다. 매입 후 곧바로 월세를 놓는 경우도 있다는 게 부동산들의 말이다. 그래서 국내 부동산 구입 외국인의 실거주 비중이 매우 낮은 상황이다. 외국인은 전·월세를 주고 부동산가격 상승을 기다린다고 한다. 실제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국에서 확정일자를 받은 외국인 임대인은 1만500명이나 된다.

이런 현상이 심화하는 것은 한국인에게 적용되는 부동산 대출 규제 등 정책이 외국인들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외국인도 국내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으면 내국인과 동일한 규제를 받지만, 대부분이 자국 은행에서 자금을 조달해 규제 대상이 원천적으로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외국인의 경우 다주택자 여부를 파악하기 어려워 세금 중과가 무의미한 상태이고 실거주 요건에서도 예외로 취급된다고 한다. 이로 인해 시장에서는 '외국인은 부동산 규제 위에 존재한다'는 말이 나돈다. 이쯤 되면 국내 부동산시장은 눈치 빠르고 자금 여력이 있는 외국인에게는 쉽게 거액을 쥘 수 있는 먹잇감이 된다.

때마침 여야가 외국인 부동산 투기를 방지하기 위해 현재 신고제인 외국인의 부동산 취득을 허가제로 바꾸는 내용을 담은 '외국인 부동산 투기 방지법(부동산 거래신고법 개정안)' 등을 발의하는 등 입법 과정에서 적극 대처에 나섰다. 개정안은 상호주의 원칙을 강행규정으로 개정하고 외국인이 대한민국 안의 부동산 등을 취득하려면 거주의무기간(3년 이내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간)을 두고 현재 신고제인 부동산 취득에 대해서도 계약 체결 전 허가를 받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직 당론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어서 변수가 있겠지만, 시행에 들어간다면 외국인의 무분별한 투기성 부동산 구매는 원천적으로 억제될 것으로 기대된다.

정치권의 외국인 투자 규제 관련 법안 발의는 늦어도 한참 늦기는 했다. 외국인의 부동산 투자가 상당 수준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외국인에 대한 관용이 부동산투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법안 발의와는 별도로 금융 및 세제 등 다각도의 규제방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호주 일간지에 보도된 내용과 마찬가지로 우리 언론 매체에도 중국인 등 외국인 부동산 매입 규제를 촉구하는 기사가 수시로 올라올 날이 그리 머지않다. 월세를 내는 호주 여성의 울먹이는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우리라고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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