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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문 칼럼] 민주주의가 ‘국고손실’범에게 너그러운 제도가 돼선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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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7. 27. 19:02

서지문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세금 날린 사업 지자체장이 배상." 눈을 활짝 떠지게 한 조간신문 1면 기사 제목이었다. 전직 용인시장이 연구기관의 잘못된 수요예측을 토대로 경전철사업을 방만하게 벌여서 국고에 손실을 끼친 과오에 대해 대법원이 전임 용인시장과 연구기관에 국고손실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당연한 판결인데도 불구하고 이것이 지방자치단체가 막대한 세금을 들여 벌인 민간투자사업의 실패로 발생한 재정손실에 대해서 지자체장이 배상해야 한다는 첫 확정판결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외국의 경우는 다양한 기준과 판례가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주의를 기울이기만 했어도 범하지 않았을 정책 오류를 범해서 국민과 국가에 피해를 끼친 국가 공무원이나 지자체 책임자에게 너무나 너그럽다. 그것이 선출직 공무원일 경우 특히 심한 것 같다. 선출직 지자체장의 경우 자신 소관의 지자체에서는 그가 채택한 정책이 발생시킨 긍정적 효과보다 부정적 효과가 훨씬 크더라도 그 지역 주민이 선출한 사람이니 그들의 자업자득이라는 식의 체념적 기류가 지배적인 것 같다.

이런 체념적 운명관에서 헤어날 첫 탈출구가 '주민소환제'였다. 주민소환제는 지역주민들에 의해서 선출된 공직자, 예컨대 시장, 도지사, 지방의원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지 않거나 독단적인 지자체 경영, 독직 등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주민의 투표를 통해 임기 중에 해임할 수 있는 제도다. 주민소환제도는 비록 주민들에 의해 선출됐다고 하더라도 그 이유로 주민들이 해당 공직자의 임기 내내 그의 인질이 되지 않을 수 있게 해준다. 그런 점에서 주민소환제도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이번 용인시장의 경우는 그의 임기가 이미 끝났으므로 주민소환은 가능하지 않고 다만 배상판결을 통해 재직 중 과오에 대한 제재를 할 수 있을 뿐이다. 물론 전임시장이 아무리 재산가라 해도 사업시행 민간업자에게 누적 1조5000억원의 손실보상을 해야 할 경전철사업이 초래하는 국고손실을 개인자산으로 배상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판결은 선출직공무원도 그가 행한 시책에 대해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확인하고 누구든 지자체장이 되었을 때 선심성으로, 업적을 구축하기 위해, 지인들에게 혜택을 나눠주려고, 등등의 동기에서 막대한 예산이 드는 SOC 사업 등을 따내서 시행하고 싶은 유혹을 상당부분 자제하도록 할 것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이제 시동을 건 것에 불과하지만 공직자의 책임 행정을 유도하고 지방자치의 민주성을 강화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자신의 정책결정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하는 공무원이 선출직 지방공무원만일 수는 없다. 우리나라는 아직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법적으로는 국회의원도 국민소환의 대상이고 대통령과 각료도 탄핵의 대상이며 개인적인 비리가 아니더라도 그의 시책이 국가적 손실을 끼쳤거나 국민의 권리를 침해했다면 모든 공직자가 사법적 제재의 대상이다. 물론 이 제도가 늘 정당하게 운용된 것이 아님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수립된 이래 개별 공직자의 실책이나 판단 오류, 독직으로 국민의 혈세가 낭비되었다고 하더라도 이에 대한 책임추궁은 아마도 발생 건수의 100분의 1도 되지 않을 것이다.

한 나라의 국민 세금의 총액인 국고를 얼마나 알뜰하게, 얼마나 현명하게 활용했는가가 곧 그 나라의 민주주의의 지수이며 잠재력의 척도가 아닌가? 우리나라는 집념의 '개발독재'를 추진하며 국고와 원조, 차관을 효율적으로 투자했기 때문에 '한강의 기적'을 이룩하고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으로까지 성장할 수 있었다. 이는 실로 위업이었지만 또한 부패가 먹이로 삼을 부스러기가 더 풍부해졌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대한민국 수립 이래 우리 국민은 나라의 쾌속성장을 기뻐하고 경탄하면서 동시에 권력자들의 부패와 비리에 매일매일 놀라고 분개했었다. 관료의 부패야 어느 국가에선들 없었겠는가만, 부정부패는 민주주의를 좀먹고 파괴한다. 그래서 경제성장 위에 '민주화'가 된다면 부패와 비리가 사라지고 이상 사회가 올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런 '민주화의 묘약'에 대한 기대는 환상에 불과했던 것인가. 선거구 주민의 표 획득경쟁을 벌이는 민주주의 제도 아래에서도 더 많은 표를 얻기 위해서라면 용인시의 경우처럼 무리한 사업을 벌여 예산을 낭비하고 그 과정에서 부패의 고리도 생성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과거 베네치아가 번성을 누린 이유의 하나가 국가예산의 낭비를 용서할 수 없는 범죄로 취급하고 엄하게 다스린 덕분이라고 한다. 이번 대법원 판결이 이런 문제에 경종을 울리고 베네치아에서처럼 국고손실의 고리를 끊어내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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