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분이 쓴 글을 읽었다. 한국이 어려운 대내외 여건 속에서도 세계 10대 경제 대국의 반열에 올라서게 된 것은 바로 한국 특유의 '개굴개굴' 문화 덕분이라는 게 그의 견해였다. 개굴개굴은 개구리들이 한데 모여 내는 소리다. 사람의 웅성거리는 소리와 비슷하다. 한국 기업 근무 경험이 있는 그는 거리를 오가면서 한국인들의 습성을 파악하려고 애썼다고 했다. 늦은 밤 회사 회의실에 모여 현안을 놓고 날이 새도록 대화를 나누는 한국 직장인들을 처음에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제품 생산 후 그 제품이 소비자들로부터 어떤 반응을 얻고 있는지 늦은 밤까지 의견을 나누는 모습을 보고 한국인의 근면성을 깨닫게 됐다. 한국 직장인들의 대화소리가 자신에게는 개구리들이 한데 모여 소리를 내는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이재명 정부 들어 주 4.5일 근무제 시행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예를 들어 월, 화, 수, 목요일은 하루 종일, 그리고 금요일은 반나절 근무를 하고 퇴근하는 얼개를 갖고 있다.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정부는 열심히 시동을 걸고 있다. 직장인들은 한결같이 여유로운 삶, 가족과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삶을 꿈꾸며 근로시간 단축을 늘 희망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근로시간 단축은 어찌 보면 직장인, 근로자들의 로망이 되고 있다. 30대 직장인의 생각은 그러나 달랐다. "금요일 나와서 절반만 일하고 퇴근하는 것은 사회적 낭비가 될 수 있다. 차라리 사회적 합의와 노사의 의견 일치를 바탕으로 근무시간 유연제를 도입하는 게 훨씬 낫다." 4.5일 근무제 도입을 위해 정부나 국민 모두가 앞으로 개굴개굴 삼삼오오 모여 의견을 나누게 될 것이다. 그래서 최선의 사회적 합의가 도출될 것이다.
우리의 경제 발전의 토대는 앞서 언급한 대로 우리 국민의 부지런함에 있다. 한 마음으로 개굴개굴 의견을 내면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상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온 결실이기도 하다. 여기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두가 그렇게 살아왔고 지금도 그런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삶의 방식을 중국 등 경쟁국들이 따라 하고 있는 게 문제다. 베트남도 그렇고 인도네시아도 그렇고 한국 경제의 눈부신 발전상을 알고 있는 외국인들은 다 한국과 한국인의 근면성을 본받아 살고 있다. 오죽하면 새마을운동이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서 국책사업으로 시행되고 있을까.
최근 미국 샌프란시스코 여행을 갔다 온 지인은 깜짝 놀랐다. 공항에서 내려 택시를 타려다 운전석이 텅 빈 택시들이 수시로 오가는 모습을 본 것이다. 다른 지인도 로스앤젤레스 거리를 다니다 운전자가 없는 택시가 거리를 질주하는 모습을 보고 역시 기겁을 했다. 중국의 한 도시에도 무인 택시가 수백 대 운행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우리는 아쉽게도 그렇게 못하고 있다.
미국인도, 중국인도, 세계 많은 나라 국민들이 우리의 전유물처럼 된 개굴개굴 문화에 익숙해졌나 싶다. 인공지능(AI)과 IT 등 경제 견인차 역할을 하는 업종에 관한 한 이제 우리는 마음을 절대 놓을 수 없는 형편이 됐다. 엔비디아가 세계 반도체시장을 좌지우지하고 있고 미국 테슬라와 중국 BYD 등 전기차들이 전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국민 기업 삼성전자와 그 뒤를 잇는 SK하이닉스가 주문생산자로 전락할 가능성도 크다. 중국산 저가 전기차가 밀려들 날이 그리 머지않았다. 그렇지만 국내 기업들의 대응은 매우 느린 듯하다. 기우(杞憂)겠지만 근로자들의 대응도 덩달아 느려지고 있는 것 아닐까.
주 6일 근무하다 어느 날 5일로 근무일수가 줄어들자 마치 천국에 사는 기분을 느꼈다. 주 6일 근무의 고단함은 곧바로 씻겼다. 5일 근무가 정착되자 근로시간이 더 줄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기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들은 가급적 적게 일하려고 한다. 그런데 우리의 상황은 결코 녹록지 않다. 중국 IT 종사자들이 주당 100시간 근로를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세계를 선도하려면 끝없는 자기 개발과 기술 혁신이 필요하다. 안타깝지만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4.5가 아니라 기업이 마음껏 혁신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개선해 주는 것이다. 직장인들이 근로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펼 수 있도록 갑을 관계 등 기업 문화를 혁신하는 것이다. 정부는 글로벌 시각을 바탕으로 민간의 자율을 최대한 보장해 줘야 한다. 세계는 지금 총성 없는, 무한 전쟁을 펼치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