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무더운 날씨를 보인 12일 서울 중구 서울역 지하도에서 노숙인들이 무더위를 피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정재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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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폭염과 폭우가 반복되고, 겨울에는 혹한이 몰아치는 기후 위기 속에서 거리 생활을 하는 노숙인들의 생활 환경은 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폭염과 극한호우가 전국을 강타하고 지나간 8월 중순, 아시아투데이가 노숙인들이 많이 나타나는 서울 주요 역들을 찾아 이들의 일상을 들여다 봤다.
12일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는 오전 11시 경, 서울역 광장에는 곳곳에 노숙인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들은 한 명씩 자리를 깔고 앉아 휴식을 취하기도 했고,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30도를 넘나드는, 여전히 찌는 듯한 날씨에 기력이 떨어진 듯 축 처져 있던 한 노숙인은 노숙인을 지원하는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직원이 다가가 시원한 물을 건네자 받아들어 벌컥벌컥 물을 들이켰다.
이 노숙인은 폭염으로 기력이 떨어지는 등 어려움이 있다면서도 정부 지원 시설에 들어가기보다는 거리 생활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그는 “시설에 들어가면 정부 지원금이 줄어든다. 주거만 생길 뿐 일상생활을 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지는 것”이라며 “비가 많이 올 때면 지하 역사나 통로에 들어가 있으면 지낼 만하다. 겨울 혹한기에는 어쩔 수 없이 잠시 시설에서 지내다 나오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어 이동한 지하 역사에는 더위를 피해 실내로 들어와 지내는 노숙인들이 다수 눈에 띄었다. 이들은 통로 한쪽에 줄지어 자리를 깔고 휴식을 취하고 있기도 했고, 일부는 통로 구석에 천막들을 덧대어 쳐 놓고 안쪽에서 잠을 청하기도 했다. 취재에 응한 한 노숙인은 “그래도 이곳은 지낼 만한 편이다. 다른 역에도 가 봤는데 좁고 어두워 지내기가 어렵더라”고 했다.
이처럼 센터의 지원이 있는 서울역과 달리 도움의 손길이 잘 닿지 않는 곳도 있었다. 센터 관리 지역 밖인 영등포역은 역 안팎에서 나타나는 노숙인 수는 비교적 적었으나, 도움의 손길을 많이 받지 못한 탓인지 근처 노숙인들은 더욱 열악한 환경에 지쳐 보이는 모습이었다.
점심시간이 막 지난 무렵, 역 근처에 하나 둘씩 자리잡은 노숙인들은 서로 별다른 소통 없이 각자의 사정에 바쁜 듯한 모습이었다. 일부는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기도 했고, 일부는 허겁지겁 식사를 하고 있기도 했다. 비둘기가 다니는 길가에 겨우 드리운 작은 그늘을 찾아 몸을 뉘인 모습도 보였다. 거리에서 만난 한 노숙인은 “그나마 서울역은 지내기 좋은 편이다. 식사를 제공하는 곳도 많고 물품 제공도 때마다 해 준다”며 “서울에서도 구마다 시설이 제공되는 곳도 있으나, 관리비가 지원이 안 돼 감당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 무더운 날씨를 보인 12일 서울 중구 서울역 앞에서 한 노숙인이 서울시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복지사들이 나눠준 포도당과 얼음물을 마시고 있다. /정재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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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매년 실시하는 일시집계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서울시의 노숙인 수는 3067명이다. 이 중 다수는 임시주거 지원을 받거나 시설에 입소해 있으나, 여전히 거리에서 생활을 이어가는 노숙인 수도 지난해 10월 기준 551명에 달한다. 서울시로부터 노숙인 지원 사업을 위탁받아 수행하는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에 따르면, 서울역·용산역·고속터미널역·잠실역·강남역 등 서울역 인근에 나타나는 거리 노숙인은 적은 달에는 하루에 172명, 많은 달에는 하루에 207명 등으로 하루 평균 191.3명이다.
센터는 올해 여름철 거리 노숙인 보호를 위해 6월 1일부터 9월 30일까지 약 4개월 간을 중점 대책사업 추진 기간으로 지정해 센터 직원이 2~3시간마다 계속해서 거리를 돌며 거리 노숙인 점검활동을 강화하도록 했다. 점검 중 응급 환자를 발견할 경우 응급 입원을 시키거나 치료를 받도록 하고, 응급이 아닌 경우 폭염 때는 보다 시원한 장소로, 혹한 때는 따뜻한 장소로 이동하도록 돕는 활동도 진행하고 있다. 또 폭염 대비 무더위센터 운영, 위기 거리노숙인 집중 사례관리 및 서비스 지원 등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더해 노숙인들에 대한 주거 지원으로 거리 생활을 피하도록 하려고 있으나, 노숙인 지원 주택은 정신질환이나 알코올 의존증을 앓고 있는 경우 입소 대상에 해당하고 임시 주거 지원은 일반적으로 2~3개월, 최대 6개월까지가 기한이다. 본인의 동의 하에 입소할 수 있는 생활시설도 있으나 그나마도 기초수급자 자격이 사라지거나 여러 사람들을 한 공간에 받으며 일괄적인 생활환경과 입소자 간 갈등 발생으로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거리 생활을 고수하는 노숙인들은 아직도 남아 있는 상태다. 그나마 노숙인들이 거리에서 밤을 보내지 않도록 일시보호 잠자리를 제공하는 게 가장 현실적인 대책이다.
시와 센터의 노력에도 여전히 폭염, 폭우, 혹한 등 환경에 영향을 받는 노숙인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지만, 이마저도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에서는 양호한 편에 속한다. 센터 관계자는 “노숙인 사업은 중앙정부 지원 사업이 아니다. 지자체에서 전부 지원하는 것”이라며 “그래도 서울은 지원이 굉장히 잘 되는 편이다. 서울에 3개의 지원센터가 있는데 훨씬 지역이 넓은 경기도도 3곳만 운영하고 있고, 의료지원을 걱정 없이 하는 경우나 임시 주거지원, 노숙인 지원주택이 있는 곳도 서울 뿐”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지역 간 편차가 너무 심해서 이것을 조금 상향 평준화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하은 기자·김범준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