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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총선에서 제1당에 올랐으나 사실상 군부의 반대로 집권에 실패했던 진보 성향의 인민당(전진당의 후신)은 이번 총리 선출 국면에서 의회 의석의 약 3분의 1(143석)을 거머쥐고 결정적인 '킹메이커'로 부상했다.
인민당은 연정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대신, 자신들의 표를 이용해 과도 정부를 세우겠다는 정치적 혁신을 선언했다. 이들이 내건 조건은 △차기 총리는 4개월 내에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실시할 것 △군부가 만든 2017년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할 것 두 가지다. 이는 2023년 총선 승리에도 불구하고 군부가 임명한 상원의원들의 반대로 집권이 좌절됐던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계산이 깔린 전략이다.
현재 총리직을 놓고 경쟁하는 두 진영은 패통탄 전 총리가 소속된 프아타이당과 연정에서 이탈한 품짜이타이당이다. 두 정당 모두 인민당의 요구 조건을 수용하겠다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지만 인민당의 선택은 쉽지 않다.
프아타이당을 지지할 경우 의석수(프아타이 135석·인민당 143석)만으로 과반을 훌쩍 넘어 안정적인 총리 선출이 가능하다. 하지만 프아타이당은 2023년 총선 후 인민당의 전신인 전진당을 '배신'하고 군부 보수 세력과 손을 잡고 연정을 꾸렸다는 원죄가 있다.
반면 품짜이타이당은 2014년 쿠데타와 연계된 보수 정당으로 인민당과는 이념적으로 정반대에 서 있다. 이들과 손을 잡는 것은 인민당의 정체성을 근간째 흔드는 위험한 선택이 될 수 있다. "솔직히 말해 우리는 둘 다 믿지 않는다"는 인민당 대변인의 말처럼, 고민은 깊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딜레마는 1일 열린 인민당 내부 회의에서 그대로 표출됐다. 회의는 격렬한 토론 끝에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하고 끝났다. 일부 강경파 의원들은 두 후보 모두를 지지하지 말고 기권할 것을 주장했고, 다른 의원들은 일단 두 후보 모두를 지지한 뒤 다른 정당들의 협상에 맡기자는 의견까지 내는 등 당내에서도 분열이 포착됐다.
프아타이당과 품짜이타이당이 치열한 물밑 작업을 벌이는 가운데 캐스팅보트를 쥔 인민당이 방향을 정하지 못하면서 태국 정국은 당분간 안갯속을 헤맬 것으로 보인다. 의회가 이번 주 수요일부터 특별 회기를 시작하는만큼, 이르면 이번 주 내에 총리 선출 투표가 진행될 수 있어 인민당의 최종 결정에 모든 시선이 쏠리고 있다.
앞서 페통탄 총리는 태국-캄보디아 국경 분쟁 당시 훈센 캄보디아 상원의장과의 전화 통화 내용이 유출되면서 '심각한 윤리 위반'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지난달 29일 총리직을 박탈당했다. 통화에서 그는 자국군 장성을 비판하고 캄보디아 측에 저자세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그의 아버지인 탁신과 고모인 잉락에 이어 친나왓 가문에서 또 한 명의 총리가 군부 쿠데타나 사법부의 판결로 축출되는 비운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