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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까. 시설의 통폐합 방안을 고안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나 인력 조정 역시 난감하다. 정부는 구조개편 3대 방향 중 하나로 지역경제와 고용 영향을 최소화하라고 제시했다. 생산 설비를 줄이는데 인력은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까. 공장에 불이 꺼지면 출근할 사람이 없는데 주변 상권들은 평소 매출을 유지할 수 있을까. 기업들이 어떤 묘안을 낼 수 있을까. 이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데 곤란한 지점이 한 두군데가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참고해 볼 사례는 있다. 석유화학의 구조조정을 이야기할 때 항상 회자되는 일본은 정부가 주도적으로 칼을 뺐다. 일본 정부는 1980년대 초 관련법을 제정한 후 주요 화학사에 노후하고 중복된 나프타분해시설(NCC)의 폐쇄 명령을 내렸다. 이어 1990년에는 규제를 풀고 기업들이 스스로 사업을 매각하거나 합작하는 방향을 유도했다. 정부가 먼저 속도를 내 범용 에틸렌 등의 설비를 정리한 후 기업들이 스스로 추가 정리를 하도록 했다.
삼일PwC는 '일본 석유화학 구조조정 사례와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규제 완화·세제 지원·노조·지자체 조정 기능을 컨트롤타워로 묶어 주되, 어디를 자를지는 기업이 정하게 하는 일본식 모델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단 정부가 구조조정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필요하다는 뜻이다.
사실 기업 주도의 구조조정으로 방향을 정한 것은 매우 잘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석화처럼 기업과 제품이 다양하고 내용이 복잡한 부문을 정부가 함부로 건들면 안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산업의 현장을 잘 모르는 상황에서 정부가 무조건 나서 산업 자체가 망가진 사례도 있다. 과거 해운업이 그러했다.
다만 현재 석화 산업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중국의 물량공세로 인한 구조적인 변화여서, 그간 반복되던 사이클에서 벗어나 속도가 중요하다. 같은 DNA를 공유하고 있는 계열사끼리 합병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데 현재 진행 중인 석유화학 업계의 구조조정은 다른 회사 간 시설 통폐합을 염두에 둬야 한다. 정부가 석유화학 구조개편 방향을 밝히기로 예고했을 때 이 고난이도의 작업을 주도할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도 많았다. 그러나 정부는 기업의 자발적 구조조정을 강조했다. 먼저 자구노력과 재편안을 가져와야 정부의 금융·세제·규제 완화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는 게 골자다.
이미 방향은 정해졌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놓인 효자 산업군의 험난한 여정에서 우선 기업의 역할은 확실하다. 정부는 산업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강력한 의지를 계속해서 보여줘야만 정부와 기업의 '협동 성공' 사례로 남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