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협주곡 3번, 청력 상실의 위기 속에서도 피어난 인간의 의지
브루크너 교향곡 1번, 젊은 패기와 원숙한 성찰이 공존하는 출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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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연의 주제는 "베토벤과 브루크너: 다단조의 밤"이다. 음악사에서 c단조는 특히 베토벤 이후 비극적이거나 영웅적인 성격과 깊이 연관되어 왔다. 베토벤은 중요한 시기에 c단조를 선택해 강렬한 표현을 담았는데, 교향곡 5번이나 피아노 협주곡 3번, 소나타 8번 '비창' 등이 대표적이다. 이 조성은 그의 음악에서 고통과 저항, 그리고 극복의 의지를 드러내는 상징적 장치로 기능했다. 브루크너 또한 첫 교향곡에서 같은 조성을 택함으로써, 종교적 색채와 긴장감이 교차하는 자신의 음악적 기원을 보여주었다. 두 작곡가가 남긴 작품은 시대를 초월해 다단조가 지닌 무게와 상징성을 증명한다.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3번 c단조 Op.37은 다섯 개 협주곡 가운데 가장 실내악적인 성격을 지닌다. 그러나 '실내악적'이라는 표현은 규모가 작다는 의미가 아니라,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서로 대등한 위치에서 섬세한 대화를 주고받는다는 점을 가리킨다. 이 곡은 1800년 무렵부터 구상되었고, 1803년 4월 5일 테아터 안 데어 빈(Theater an der Wien)에서 베토벤이 직접 독주자로 초연했다. 당시 초연에서는 피아노 파트보(개별 연주자용 악보)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아, 베토벤이 일부를 즉흥적으로 연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종적인 악보는 1804년에야 완성되었으며, 이 과정을 통해 협주곡 3번은 젊은 베토벤의 창작 에너지를 응축한 결정체로 자리매김했다. 그날 프로그램에는 교향곡 2번과 오라토리오 '감람산의 그리스도'도 포함돼, 그의 역량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연주회가 되었다.
이 작품은 모차르트의 d단조 협주곡(K.466)의 영향을 엿볼 수 있지만, 동시에 베토벤 특유의 극적 긴장과 심리적 밀도를 담고 있다. 1악장은 오케스트라의 엄숙한 서주 뒤에 독주 피아노가 등장하며 긴장과 갈등의 대화가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베토벤은 피아노와 관현악을 대등한 주체로 세워 끊임없이 대립과 화해를 반복한다. 청력 문제로 인한 불안이 점차 현실로 다가오던 시기에 쓰인 만큼, 이 1악장은 그의 삶을 향한 결연한 응답처럼 들리기도 한다. 2악장은 고요하고 서정적인 분위기로, 현악의 부드러운 반주 위에 흐르는 피아노 선율이 오페라의 아리아를 연상시킨다. 이는 고독과 위로가 교차하는 내면의 고백으로도 해석된다. 3악장의 론도는 경쾌하면서도 다양한 주제가 끊임없이 제시되며 활력을 불어넣는다. 어두움에서 벗어나 밝은 에너지를 되찾는 듯한 흐름이 이 악장을 지배한다. 결국 협주곡 3번은 단순한 기교적 과시가 아니라, 내적 고통과 저항, 그리고 새로운 가능성을 담아낸 작품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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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무대는 브루크너 교향곡 1번이다. 교향곡 장르에서 브루크너는 흔히 '거인'으로 불렸지만, 그의 출발점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그는 오르가니스트이자 교회음악가로 활동하다가 마흔을 넘긴 나이에 비로소 첫 정식 교향곡을 세상에 내놓았다. 교향곡 1번은 1866년에 작곡되어 1868년 린츠에서 초연된 '린츠판'과, 1891년 빈에서 그가 직접 개정한 '빈판'으로 나뉜다. 린츠판은 거칠고 원초적인 힘이 살아 있으며, 마치 신인이 두려움 없이 던진 첫 외침처럼 날것의 에너지가 강렬하다. 반면 빈판은 말년에 손질된 판본으로, 오케스트레이션이 정제되고 구조가 명료해지면서 한층 세련된 인상을 준다. 같은 곡이지만 린츠판과 빈판은 서로 다른 성격을 지녀, 한 작곡가의 작품 안에서 보기 드문 시간의 간극과 음악적 성찰을 드러낸다.
교향곡 1번에는 훗날 브루크너의 교향악 세계를 특징짓게 될 요소들이 이미 자리하고 있다. 반복적으로 고조되는 이른바 '브루크너 시퀀스', 예기치 않은 정지와 침묵, 그리고 금관악기의 적극적인 활용은 당시 교향곡의 규범을 넘어선 시도로 평가된다. 린츠판이 날것의 패기와 실험정신을 드러낸다면, 빈판은 보다 정제된 오케스트레이션과 명확한 구조 속에서 원숙한 인상을 전한다. 두 판본은 한 작곡가의 출발과 성찰이 한 곡 안에 공존하는 드문 사례라 할 수 있다. 특히 빈판에서는 음향의 층위가 한층 정교하게 조직되어, 대성당의 오르간을 연상시키는 울림을 낳는다는 해석도 있다. 이번 무대에서 연주될 빈판은 브루크너가 말년에 직접 개정한 판본으로, 그의 의도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자 교향곡 세계의 출발점과 그 지향을 동시에 보여주는 상징적 작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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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즈 시리즈'는 지난 여섯 차례 무대에서 다양한 레퍼토리를 탐구하며 독자적인 궤적을 그려왔다. 심포니 송은 이를 통해 젊은 오케스트라가 단순한 기량 과시에 머무르지 않고, 음악사의 흐름을 폭넓게 조망하며 미래 세대와 호흡하는 무대를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일곱 번째 무대인 이번 공연은 베토벤과 브루크너라는 두 거장의 미학을 통해 음악사의 전환점을 되새기게 한다.
"다단조의 밤"이라는 부제는 단순한 조성의 일치를 넘어, 어둠 속에서 빛을 찾는 여정이라는 상징으로 읽힌다. 베토벤의 협주곡은 고통과 저항의 정서를 담아내며, 삶의 위기 앞에서 자기 존재를 지켜내려는 인간의 모습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어지는 브루크너의 교향곡은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선언으로 해석되며, 불안한 시대에도 길을 찾아 나서려는 인간의 의지를 떠올리게 한다. 프로그램은 고통에서 저항으로, 다시 시작과 확립으로 이어지는 감정적 흐름을 청중에게 전달한다. 후기 낭만주의의 동요가 오늘의 현실과 겹쳐지듯, 불확실성과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 청중은 이 다단조의 울림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할 여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심포니 송이 내세운 '다음 세대를 위한 오케스트라'라는 슬로건처럼, 이번 무대는 거장들이 남긴 음악의 언어를 오늘의 젊은 연주자들이 새롭게 해석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지휘자 함신익의 노련한 지휘와 피아니스트 김규연의 섬세하면서도 강인한 연주가 어우러져, 이 공연은 단순히 익숙한 작품을 다시 들려주는 차원을 넘어 한국 클래식계의 현재와 미래를 비추는 상징적 무대로 기대를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