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필라성 불탑서 스리랑카 사원, 다시 부천 석왕사로
주지 영담스님, 1980년 후반부터 이주민 지원한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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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석왕사는 5일 오후 1시 경내 천상법당(天上法堂)에서 석가모니 부처님 진신사리 친견 법회를 스리랑카 스님 2분의 인례 아래 100여 명과 함께 봉행했다.
석왕사는 일년에 한번 백중(음력 7월 15일)을 앞두고 진신사리를 음력 7월 8일~14일까지 일주일간 공개한다. 진신사리는 부처님과 동일하게 취급한다. 사실상 일반인이 석가모니 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는 일 년에 한번 있는 날인 셈이다.
스리랑카 스님들이 삼보(三寶·석가모니 부처님, 가르침, 승가)에 대한 예경과 초기 경전 숫타니파타 속 '행복경'을 빨리어로 독송했고, 한국 불자(불교 신자)는 이를 함께 따라 읽었다. 이후 줄을 서서 한명씩 스리랑카식 사리닫집(법당의 불좌 위에 다는 집 모형) 앞에서 2cm 길이의 치아 모양 사리를 친견했다.
일 년 동안 이날을 기다린 불자들은 조금이라도 사리를 더 보려고 애썼다. 한 60대 불자는 "떨리면서 기쁘다고 말했다"고 말했고, 스리랑카 이주민은 자녀에게 친견 법회를 하는 이유와 한국과 스리랑카의 우호 관계를 설명했다.
이날 법회가 뜻깊은 것은 공개된 사리가 전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족보' 있는 부처님 사리기 때문이다. 부천 석왕사는 영국 고고학자가 석가모니 부처님 고향인 인도 카필라성 고대 불탑에서 발굴한 진신사리 21과 중 하나를 모시고 있다.
카필라성 출토 사리는 1898년 발굴 당시 5개의 사리병이 들어있던 석함(石函)에는 브라미어(산스크리트어의 뿌리가 되는 고대어)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매장 사리. 이 위업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배우자, 자식, 형제자매, 그리고 다른 가족들이 만든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부처님의 죽음을 다룬 열반경에 기록된 "카필라성 출신의 석가족은 가장 거룩한 성인의 진신을 모실 불탑을 세우고 그 거룩함에 걸맞은 엄숙한 의식도 준비했다"는 내용과도 일치한다. 영국고고학계는 발굴 후 팔리어 경전의 최고 권위자였던 수부띠 스님에게 자문을 받아 석함 내의 브라미어를 해독했고, 답례로 스님이 주석하고 있는 스리랑카 수부띠 대사원에서 진신사리 21과를 기증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스리랑카 정부와 수부띠 대사원은 이 사리 중 하나를 2014년 7월 부천 석왕사에 건넸다. 당시 스리랑카 라자팍세 대통령이 직접 이운식에 참석했을 정도다. 이는 부천 석왕사 주지 영담스님이 1980년 후반부터 꾸준히 스리랑카 사찰을 지원한 것과 주한 스리랑카 노동자의 권익 보호에 힘쓴 것에 대한 답례였다.
전 세계에 부처님 사리로 알려진 사리는 많지만, 진위를 알 수 없는 사리가 다수다. 부처님 당시 인도 장례 풍습에서 사리는 우리가 아는 구슬 모양보다는 '뼛조각'에 가깝다. 실제로 '뼈' 모양의 사리는 적고, 카필라성 출토 사리처럼 역사적인 이력이 확인되는 사리는 인도 델리 박물관, 미얀마 까바에 사원, 태국 방콕 에메랄드 사원, 중국 법등사 등에 보존된 사리를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석왕사 관계자는 "영담스님의 공이 인정받은 민간 외교적 성과였다"면서 "라자팍세 대통령은 대통령을 퇴임한 2016년에도 부천 석왕사를 방문한 바 있다. 올해도 라자팍세 대통령의 아들이 방한해서 영담스님을 만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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