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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E20 연료 전면 도입에 ‘차량 손상’ 우려 확산…운전자에겐 선택권 ‘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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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승인 : 2025. 09. 08. 09:36

INDIA-AUTOS/ETHANOL <YONHAP NO-7598> (REUTERS)
지난달 28일 인도 콜카타에 있는 주유소에서 차량에 연료를 넣고 있는 주유소 직원들의 모습/로이터 연합뉴스
인도 정부가 에탄올 혼합 연료인 'E20'를 전국적으로 확대 보급하면서, 세계 3위 자동차 시장인 인도 전역이 극심한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고 로이터가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E20는 휘발유에 사탕수수나 옥수수 등에서 추출한 에탄올을 20% 섞은 바이오연료다. 인도는 2014년 이후 에탄올을 섞은 바이오연료를 통해 6980만 톤(t)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였고, 155억 달러(21조 5512억원)에 달하는 원유 수입 비용을 절약했다.

여기에 에탄올 비율을 높은 E20은 원유 수입 의존도를 더욱 낮춰 연간 50억 달러(6조 9470억원)을 절약할 수 있고, 농가에도 연간 46억 달러(약 6조 3912억원)의 소득 증대를 안길 수 있다는 것이 인도의 계산이다. 인도는 이런 기대효과와 함께 탄소 배출을 줄인다는 명분으로 지난 2023년부터 E20을 시범 도입한 뒤 올해 4월부터 전국으로 확대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기존의 E10(에탄올 10%)이나 E5(에탄올 5%) 연료가 전국의 9만 개 주유소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됐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구형 차량들은 E10 연료에 맞춰 설계됐는데 운전자들은 운전자들은 자신의 차량에 손상을 줄 수도 있는 E20 연료를 울며 겨자 먹기로 주유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E20 연료는 기존 휘발유보다 에너지 밀도가 낮아 연비가 떨어지고, 부식성이 강해 E20 사용에 맞춰 설계되지 않은 구형 차량의 연료관·개스킷 등의 부품을 손상시킬 수 있다.

델리에서 2017년식 차량을 운행하는 아미트 판디 씨는 BBC에 "왜 연비도 낮은 기름을 강제로 사야 하고, 내 차를 그 기름에 맞추기 위해 추가 비용까지 써야 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E10 등 기존 연료가 단종된 인도에선 일부 자동차 제조사들은 수리 키트나 연료 첨가제 사용을 권고하고 있지만, 이 역시 모두 소비자의 부담이다. 인도의 이런 정책은 브라질·미국 등 다른 에탄올 혼합 연료 사용 국가들이 여러 종류의 연료를 함께 판매해 소비자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운전자들의 이런 우려에 대해 인도 당국은 "근거 없는 우려"라며 "구형 차량은 일부 고무 부품이나 개스킷을 교체하는 간단한 과정만 거치면 된다"는 입장이다. 인도 대법원 역시 E20 정책이 차량에 해를 끼치고 소비자의 선택권을 침해한다는 내용의 시민 청원을 기각하며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인도 자동차 업계의 '말 바꾸기'도 도마 위에 올랐다. 자동차 업계는 최근 "실험 결과 연비가 2~4% 하락할 뿐, 안전한 연료"라며 정부를 옹호하고 나섰다.

하지만 인도자동차공업협회(SIAM)는 2020년에는 정반대의 입장을 냈다. 당시 협회는 "구형 차량의 안전한 운행을 보장하기 위해 정부는 반드시 E10을 E20과 함께 공급해야 한다"며 "구형 차량의 부품을 교체하는 것은 엄청난 작업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운전자들의 불만이 이어지는 가운데 식량 안보 위기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E20의 원료인 에탄올을 만들기 위해 막대한 양의 식용 작물이 '자동차 연료'로 전용되면서 인도의 식량 수급 체계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에탄올의 원료가 되는 사탕수수는 물을 작물이라 환경 부담이 크고, 옥수수는 에탄올 생산량이 급증하면서 수십 년 만에 인도가 옥수수 순수입국으로 전락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닭 사료 가격 급등으로 이어져 축산 농가에까지 피해를 주고 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쌀'의 전용이다. 올해 인도 식량공사(FCI)는 빈곤층에게 보조금으로 지급해야 할 쌀 520만 톤(t)을 에탄올 생산용으로 배정하는 전례 없는 결정을 내렸다. 농업 전문가인 데빈더 샤르마는 BBC에 "2억 5000만 명이 굶주리는 인도 같은 나라에서 자동차를 먹이기 위해 식량을 사용할 수는 없다"며 "이 정책은 몇 년 안에 농업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력히 경고했다.
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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