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후판 생산 등 철강업계 역사 기록
20대 불교 귀의 후 현대 불교 발전 초석 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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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동국제강그룹은 창업주 50주기를 하루 앞두고 서울 마포구 소재 대한불교진흥원 3층 대법당 다보원에서 '대원 장경호 거사 50주기 추모 및 대한불교진흥원 창립 50주년 기념 법회'를 가졌다. 이날 행사에는 장세주 회장, 장세욱 부회장을 비롯해 동국산업그룹, 한국철강그룹 등 범동국제강그룹 경영진 78명이 함께했다.
장경호 회장의 손자 장세주 동국제강그룹 회장은 추모사를 통해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업을 시작해 민족 자본을 세우셨고, 삶의 길을 보여주신 선각자"라고 말하며, "업을 통해 민족과 국가에 보은하고자 했고, 돌아가시기 전 모든 사재를 사회와 불교에 환원하셨던 뜻을 기리며 추모할 수 있음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1899년생인 대원 장경호는 1949년 철과 인연을 맺고 재일교포로부터 '신선기'를 인수해 조선선재를 설립했다. 당시 축적한 자산을 기반으로 1954년 한국특수제강을 인수, '동국제강 주식회사'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대한민국 최초 민간 자본으로 설립된 쇳물을 만드는 철강(제강)사의 탄생이다.
국내에 대규모 철강단지가 필수적이라 여긴 그는 세간의 우려에도 동국제강 창립 10년 만인 1963년 부산제강소를 설립했다. 1965년 50톤 규모 국내 첫 '고로' 준공, 1966년 국내 최초의 전기로 가동, 1971년 국내 최초의 후판 생산 등의 역사를 써내려 갔다. 동국제강은 1970년대 초, 100대 법인 중 중화학공업 기업 매출 순위 3위(공기업 제외)까지 성장한다.
장경호 창업자는 불교계에서도 유명한 인사다. 20대 때 불교해 귀의해 수행과 참선뿐만 아니라 불서보급사, 대원정사, 불교교양대학 등을 설립해 현대 불교 발전의 초석을 다졌다. 특히 1975년 9월9일 별세 전 모든 사재 30억원(현 시세 5000억원 규모) 상당을 나라에 헌정했다. 국가에서는 그의 뜻에 따라 1975년 8월16일 대한불교진흥원을 설립했다.
특히 창업자가 불교 수행으로 얻은 배움은 동국제강그룹의 선진적인 노사관계 배경에도 녹아있다고 평가받는다. 그는 경영자로서 이윤보다는 '사람'을 중시했다. 창업자는 평소 "사람이 동국 최고의 자본"이라며 "동국의 사람들은 지극히 소중한 인연으로 만난 것으로 모두 평등한 관계로 존귀하니 서로 받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정신은 동국제강그룹 노사화합으로 이어졌다. 동국제강그룹 노사는 1994년 국내 기업 최초로 항구적 무파업을 선언하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31년째 그 약속을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