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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원 대표 측이 2018년 가족 간 합의서를 내세워 경영권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상장회사의 기본 철학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상장이란 단순히 자금을 조달하는 수단이 아니다.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들로부터 자본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 회사는 더 이상 창업자나 특정 가족만의 소유물이 아니게 된다.
가족 간 합의서가 아무리 치밀하게 작성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주주들의 이익을 제약할 수는 없다. 특히 소액주주들은 가족 내부의 사정을 알 리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투명하고 합리적인 경영을 통해 투자 수익을 얻는 것이다.
법원이 "가족 간 합의가 대표이사의 권한을 제한하는 효력을 갖기 어렵다"고 판시한 것은 당연한 결과다. 만약 가족 간 합의로 상장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좌우할 수 있다면, 주주총회는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상법이 정한 기업 지배구조의 근간이 흔들리는 일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법원의 명확한 판결에도 각종 소송을 남발하며 임시주주총회 개최를 지연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주주들의 알 권리와 참여권을 정면으로 무시하는 행위다. 특히 윤여원 대표 남편이 소속된 법무법인을 동원해 회사 돈으로 개인적 이익을 추구한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상법 개정을 통해 주주권익 강화에 나선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가족 간 합의와 주주이익이 충돌할 때는 반드시 주주가치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다. 한국 기업들도 이제 이 원칙을 받아들여야 할 때다.
물론 가족 경영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을 경영하고,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유지한다는 측면에서 가족 경영의 장점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정당성을 갖기 위해서는 주주들의 동의와 지지가 전제돼야 한다.
콜마BNH 사태는 한국 기업사회에 중요한 교훈을 던진다. 상장사의 경영진은 가족의 이익이 아닌 주주 전체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족 회의실이 아닌 주주총회에서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어야 진정한 경영자라고 할 수 있다.
임시주주총회는 이런 원칙을 확인하는 중요한 기회다. 더 이상 소송으로 시간을 끌지 말고, 당당히 주주들 앞에 나서서 경영 철학과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것이 상장사 경영진의 기본 도리이자 책임이다.
상장사가 된 순간 '가족 회사'는 끝난다. 한국 기업사회가 진정한 선진화를 이루려면 가족 이익보다 주주가치를 우선하는 성숙한 지배구조를 정착시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