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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키 전 대법원장은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다"며 시위대의 요청을 공식 수락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Z세대 그룹이 나를 믿고 단기간 정부를 이끌어달라고 요청했다"며 "나의 즉각적인 최우선 과제는 시위 도중 목숨을 잃은 젊은이들을 위한 무언가를 하는 것"이라고 밝혀 유혈 사태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것부터 국정을 시작할 것임을 시사했다.
네팔에서는 지난 5일 정부가 페이스북·인스타그램·X(엑스·옛 트위터) 등 26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접속을 차단하자 이에 반발하는 Z세대의 시위가 벌어졌다. 경찰의 강경진압에 시위도 격화했고, 샤르마 올리 총리가 사임했지만 분노한 시위대에 의해 의회 건물과 정부 청사가 불타버리고 파괴됐다. 일부 교도소에서는 재소자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탈옥하는 사태까지 벌어지며 수도 카트만두에는 12일까지 통금령이 내려진 상태다.
이번 시위는 정부의 SNS차단이 발단이 됐지만 기성 정치인들의 부정부패와 그들의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과 대비되는 네팔 국민 대다수의 빈곤·경제적 불평등 등 누적됐던 불만이 폭발했다는 분석이다.
이번 시위를 주도한 Z세대가 기성 정치인들을 모두 불신하고 카르키 전 대법원장을 선택한 이유도 그가 가진 상징성 때문이다. 2016년 네팔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법원장이 된 그는 재임 시절 부패 혐의로 현직 장관을 투옥시키는 등 권력에 타협하지 않는 '두려움 없는 판결'로 명성을 떨쳤다. 이러한 강직함 때문에 2017년에는 기득권 정치 세력의 보복성 탄핵 소추에 직면하기도 했으나 결국 이를 이겨내며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부패 척결을 외치며 거리로 나선 네팔의 젊은이들에게 낡은 정치 체제를 개혁할 수 있는 대안으로 여겨진 셈이다.
헌법에 따른 절차대로라면 대통령이 의회 다수당의 지지를 받는 인물을 새 총리로 임명해야하지만, 시위대가 임시정부 구성안을 내민 만큼 기존 의회·군부와 시위대의 협상이 향후 네팔 정치의 향방을 결정짓을 것으로 보인다. 시위대는 국가 운영의 근본적인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부패한 기존 정치인들이 아닌 국민적 신망이 높은 인물들로 구성된 '기술관료 임시정부'를 수립하자는 것이 시위대의 핵심 요구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