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소동이 끝난 자리에서 마주하는 역사와 기억의 그림자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20250914010007613

글자크기

닫기

전형찬 선임 기자

승인 : 2025. 09. 16. 07:00

연극 '칸사이 주먹' 프리뷰
제8회 1번출구 연극제 공식 초청작, 9월 17일 대학로 공간아울 개막
코미디의 외피 속에서 드러나는 정체성과 민족의 질문
01
연극 '칸사이주먹' 무대를 준비하는 배우들의 연습 현장 / 사진 극단 후암
연극은 언제나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면서 동시에 과거를 불러내는 통로다. 오는 17일부터 21일까지 대학로 공간아울에서 공연되는 연극 '칸사이 주먹'은 그 특성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작품이다.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한 편의 이야기지만, 그것은 단순히 특정 시대와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까지 질문을 건네는 살아 있는 장치로 작동한다.

제8회 1번출구 연극제의 공식 초청작으로 선정된 '칸사이 주먹'은 코미디의 가벼운 호흡으로 시작해 어느 순간 역사와 민족, 정체성의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관객은 웃음을 따라가다 뜻밖의 무게에 직면하게 되고, 결국 무대가 던지는 성찰의 자리에 서게 된다. 웃음과 눈물, 경쾌함과 진지함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이 연극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 한국 근현대사와 재일 조선인의 삶을 성찰하는 무대로 거듭난다.

작품은 1990년대 일본 칸사이를 배경으로, 귀국을 앞둔 주인공 강북두가 성수대교 붕괴 사고로 비행기가 연착되며 뜻밖의 사건을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일본 땅에서 불안정한 삶을 이어가던 한 인물이 하루의 연착 속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에 휘말리며, 무대는 웃음을 품은 소동극에서 점차 역사와 정체성의 무대로 확장된다. 일상의 작은 사건이 커다란 역사적 질문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관객에게 묘한 긴장감을 안기며, 단순한 줄거리 이상의 여운을 남긴다.

'칸사이 주먹'은 초반에는 경쾌한 웃음을 유도한다. 소소한 에피소드와 리듬감 있는 장면 전개가 관객을 자연스레 끌어들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야기는 더 묵직한 차원으로 나아간다. 무대 위 인물들이 다양한 언어를 오가며 대사를 주고받는 장치는 그들의 상황을 드러내는 동시에, 관객으로 하여금 서로 다른 정체성과 현실의 층위를 직관적으로 체감하게 한다. 희극과 비극을 넘나드는 흐름 속에서 관객은 어느 순간 웃음의 가벼움이 역사적 무게로 전환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02
연극 '칸사이주먹' 무대를 준비하는 배우들의 연습 현장 / 사진 극단 후암
03
연극 '칸사이주먹' 무대를 준비하는 배우들의 연습 현장 / 사진 극단 후암
이 작품의 창작자이자 연출가 차현석은 이번 무대에서도 직접 무대에 오른다. 그는 극단 후암과 문학시어터, 이지컨텐츠 그룹을 이끌며 '흑백다방', '자이니치', '코리아 특급' 등 일관되게 한국 근현대사와 재일 조선인의 문제를 다뤄온 인물이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는 단순한 이야기를 넘어, 무대가 지닌 사회적 울림과 예술적 의미를 함께 짚어내려 한다.

제목만으로는 일본 뒷골목을 배경으로 한 블랙코미디처럼 보이지만, '칸사이 주먹'의 실제 무대는 웃음에서 출발해 점차 역사와 정체성의 무게로 향한다. 관객은 소동극의 유쾌함으로 극장에 들어섰다가 예상치 못한 전환을 마주하며, 결국 자신이 어디에서 왔고 어떤 정체성을 지니고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 서게 된다. 그 질문은 단순히 극 속 인물만의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각자에게도 던져진다.

관객의 반응은 이미 이 작품의 힘을 증명해왔다. 무대를 찾은 이들은 "가슴 깊이 남는 울림이 있었다", "뜻깊은 경험이었다"는 소감을 남기며, 연극이 선사하는 감정을 직접 증언했다. 웃음으로 시작해 성찰로 이어지는 여정은 관객을 자연스럽게 끌어들이고, 끝내는 역사와 정체성이라는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세운다. 연극은 무대와 객석이 함께 호흡하는 순간에 가장 큰 의미를 발휘하며, 각자의 기억과 삶을 비추는 또 하나의 거울이 된다.

출연진
연극 '칸사이 주먹'의 창작자이자 연출가 차현석(위 왼쪽 큰 사진). 이번 무대에는 오랜 연기 내공을 지닌 최용민과 섬세한 연기를 보여줄 이란희를 비롯해 민지혁, 문태수, 강해랑 등 다채로운 배우들이 합류했다. / 사진 극단 후암
이번 무대에는 다채로운 배우들이 대거 참여해 작품의 밀도를 높인다. 강북두 역에는 민지혁이, 드미트리 역에는 문태수와 서삼석이 각각 무대에 오른다. 손도 역은 강해랑이 맡아 강렬한 존재감을 예고하고, 연매 역에는 조윤정과 배효미가 더블 캐스팅돼 서로 다른 해석을 선보인다. 하루키 역에는 최용민이, 후지코 역에는 이란희가 합류해 작품에 안정감과 활력을 더한다. 이 밖에도 현종식, 박서연, 민아람, 김병수, 안정웅, 서현서, 오늘, 이성원 등 무대 경험이 풍부한 배우들이 출연해 각자의 색깔로 무대를 풍성하게 채운다. 오랜 기간 창작진과 호흡을 맞춰온 배우들과 새로운 얼굴들이 어우러지며, '칸사이 주먹'의 집단극적 에너지를 배가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2025년 대학로 공연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새로운 세대와의 만남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역사를 직접 경험하지 못한 젊은 관객에게도 이 작품은 현재와 이어지는 질문을 던지며, 우리가 다시 성찰해야 할 정체성과 기억의 의미를 환기한다. 웃음으로 시작해 역사의 무게와 정체성의 질문으로 끝나는 여정은, 관객이 무대를 떠난 뒤에도 쉽게 잊히지 않을 여운을 남길 것이다.

'칸사이 주먹'은 결국 웃음을 눈물로 바꾸고, 소동극을 역사적 성찰로 바꿔놓는다. 관객은 처음엔 가볍게 웃다가도, 어느 순간 무대 위 인물들과 함께 깊은 질문 앞에 선다. 그리고 마지막에 남는 것은 한 장의 사진이 품은 무게, 나아가 시대와 사회가 우리에게 건네는 물음이다. 희극은 역사를 향한 우회적 통로이며, 웃음은 성찰을 위한 전략적 장치다. 다시 대학로 무대에 오르는 '칸사이 주먹'은 그 진실을 우리에게 확인시키려 한다.

포스터
전형찬 선임 기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