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청년이 살고 싶은 마을] 세계 러너들 사로잡은 ‘산골마을’… 지역경제도 같이 뛰었다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20250915010007600

글자크기

닫기

장수 김남형 기자

승인 : 2025. 09. 14. 17:54

전북 장수 '트레일 빌리지'
귀촌 청년 주도로 시작된 러닝 대회
3년만에 인구 8분의1 넘는 러너 몰려
식당·숙박 붐비고 특산물 판매 껑충
러닝웨어 제작 등 일자리 창출 목표
수정됨_JRT PHOTO (122)
전북 장수에서 열린 '트레일레이스'에 참가한 러너가 코스 능선을 오르고 있다. /제공=트레일빌리지
인구 2만명 남짓한 전북 장수군 산골이 청년 주도의 산악마라톤으로 전국에서, 세계에서 러너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귀촌 청년이 만든 러닝 동호회가 출발점이 됐고, 행정안전부 청년마을 사업과 맞물리면서 '트레일 빌리지'라는 이름의 새로운 지역 실험이 시작됐다. 장수의 자연경관을 기반으로 한 트레일러닝(산악마라톤) 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2020년 장수 출신의 아내와 결혼 후 장수에 정착한 김영록 락앤런 대표(33)는 지역 청년들과 함께 '장수 러닝크루'를 결성했다. 매주 산을 오르며 장안산, 팔공산, 승마로드, 계곡 등을 잇는 다양한 코스를 개발했고, 이를 기반으로 2022년 첫 '장수 트레일레이스'를 열었다. 당시 참가자는 200명에 불과했지만 불과 3년 만에 규모는 2500명으로 늘었다. 장수 전체 인구의 8분의 1이 넘는 규모다. 국내 참가자뿐만 아니라 일본, 미국, 캐나다, 중국 등 14개국에서 찾아왔고, 러너들 사이에서 장수는 이미 '트레일러닝 성지'로 불린다.

김 대표는 "장수 하면 트레일 러닝이 떠오르는 지역으로 만들고 싶다"며 "대회가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라 청년이 머물고, 세계 러너가 찾는 장수의 브랜드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코스를 직접 달리며 난이도를 조정하고, 4㎞ 단거리부터 100㎞가 넘는 장거리까지 다양한 종목을 만들었다.

처음엔 주민들에게 낯설고 어색한 행사였다. 외지인이 몰려드는 것을 걱정하고, 혹시 사고가 나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대회가 점차 지역에 자리 잡으며 분위기는 달라졌다. 주민들은 응원 종을 흔들며 환영했고, 어르신들은 직접 만든 주먹밥과 콩나물국을 나눠줬다. 김 대표는 "주민들이 함께 응원해 주시는 게 가장 큰 힘"이라며 "다른 지역은 보통 외부 대행사가 운영하고 떠나지만, 우리는 직접 정착해 지자체와 함께 준비한다는 점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대회가 열리는 기간 장수는 활기를 띤다. 식당과 숙박업소는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비고, 농가들은 사과빵, 토마토주스, 오미자 등 특산물 판매로 매출을 두 배 이상 올린다. 여름철에는 계곡 축제와 연계해 '풀밸리 트레일레이스'가, 가을에는 장수 한우·사과 축제와 연계한 '레드푸드 트레일레이스'가 열리며 지역 축제를 전국에 알리고 있다.

수정됨_KakaoTalk_20250914_080846356_02
전북 장수에서 열린 트레일 레이스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이 활기차게 달리고 있다. /제공=트레일빌리지
김 대표와 장수군의 이 같은 행보는 전국적으로 지방소멸 극복 모범사례로 소개되고 있다. 트레일빌리지는 올해 12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행안부 청년마을로 선정됐다. 청년마을 사업은 청년들의 지역 정착과 관계 인구 확대를 위해 추진하는 프로그램으로, 3년 동안 최대 6억원의 사업비를 지원한다. 청년들이 지역 자원과 아이디어를 결합해 거점 공간을 운영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실행하며, 새로운 일자리와 생활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핵심 목표다.

트레일 빌리지는 거점 공간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러너들이 모이는 트레일 센터, 청년들이 머물며 합숙할 수 있는 트레일 하우스, 인근 염소 목장과 연계한 휴식 공간인 트레일 쉼터 등이 마련됐다.

'월간 장수산'은 매달 하루 일정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으로, 러너들이 함께 달리며 교류하는 자리다. 여름에는 '나이트 트레일'이 열린다. 참가자들이 헤드램프를 쓰고 밤새 산길을 달리며 여름 더위를 식힌다. 반려견과 함께 달리는 '캐니크로스' 대회는 올해 200팀 참가가 예상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한 준비도 한창이다. 트레일 빌리지는 '락앤런' 브랜드를 기반으로 러닝웨어 등의 제작과 판매를 준비하며, 대회 규모를 확장해 기업 스폰서십을 늘리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앞으로는 숙소와 체험 공간을 단계적으로 확충해 더 많은 청년과 참가자들이 장수에 머물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김 대표는 "청년이 정착해 지역에서 일자리를 만들고, 마을 전체가 건강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김남형 기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