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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번영을 약속하는 제국
넓은 대륙 여러 지역을 다수의 군주가 나눠서 통치할 땐 지역적 경쟁과 군사적 대립을 막을 길이 없다. 지역 간 세력 균형이 파괴되면 약육강식의 살육전이 발생한다. 전쟁의 악순환을 막기 위해 여러 국가는 상호 조약과 신사 동맹을 체결하지만, 종이 위의 서약 따위가 지속적 억지력을 발휘하진 못한다. 전쟁을 종식하기 위해선 홉스가 말하는 리바이어던의 출현이 불가피하다. 절대 강자가 나타나 지방 무력을 분쇄해야만 전국시대가 종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제국이란 그 리바이어던의 다른 이름이다.
15년 만에 진(秦) 제국이 무너지고 내전을 거쳐 한 제국이 들어선 이후 초기의 황제들은 휴양생식(休養生息)의 표어를 내걸고서 작은 정부의 유순한 통치를 펼쳤다. 수백 년 이래 처음 찾아온 태평성세(太平盛世)였다. 카이사르가 살해당한 후 삼두정치의 혼란을 거쳐 내전을 종식한 아우구스투스는 평화와 번영의 팍스로마나(Pax Romana)를 열었다.
고대 중국에서나 로마에서나 정치적 분열과 군사적 대립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제국의 형성이었다. 중국사 모든 왕조 말기엔 하늘과 땅이 뒤바뀌는 천지번복(天地飜覆)의 대혼란이 발생했음에도 조대(朝代)를 바꿔 새롭게 등장한 정권은 어김없이 제국적 질서를 계승하여 더욱 공고히 하는 통치 전략을 취했다. 통일 정부 아래의 일인 지배가 아무리 힘겨워도 군웅할거 상태의 다자(多者) 지배보다는 더 평화롭고 윤택하다는 경험칙이 작용했다.
팍스로마나의 기억도 다르지 않았다. 로마에 가보면 지금도 평화롭고 풍요로웠던 팍스로마나의 유적이 수없이 남아 있다. 로마 황제들은 높은 수준의 대규모 수로 공사를 성공시켜 청정한 산지의 맑은 물을 끌어와서 시민들에게 제공했고, 수만 명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원형경기장 콜로세움을 축조했으며, 냉·온탕에 사우나 시설까지 갖춘 최고 수준의 목욕탕을 만들어서 시민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했다.
고대 중국과 로마에 출현한 거대한 제국적 질서는 그렇게 평화와 번영을 약속하는 위대한 정치적 성취였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어떤 논리로, 무슨 목적을 내세워서 제국적 질서에 반기를 들고서 당당하게 저항할 수 있었을까? 21세기 지구인들은 왜 지금도 제국을 비판하고 경계하는 반제국주의의 정치적 수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부디카 여왕의 반제 투쟁
초창기 로마제국에서 문재(文才)를 떨쳤던 타키투스(56~117)의 역사 저작에서 중요한 단서를 얻을 수 있다. 로마 시대에도 많은 이가 팍스로마나의 위대한 성취를 칭송했었지만, 타키투스는 제국적 침략의 잔혹성을 세밀한 필치로 낱낱이 기록하고 고발했다. 그의 기록에 따르면….
이케니(Iceni)의 왕 프라수타구스는 오랫동안 평화롭고 풍요롭게 왕국을 다스리던 어진 임금이었다. 서기 43년 로마제국은 영국을 침략하여 런던 북쪽의 콜체스터를 수도로 삼았고, 47~51년엔 영국 남부와 동부의 부족들을 복속시켰다. 로마제국의 위력을 막을 수 없음을 절감한 프라수타구스는 고심 끝에 왕국의 통치를 로마의 네로 황제와 두 딸에게 공동으로 위임하는 묘수를 떠올렸다. 로마 황제가 국왕으로 군림하지만, 실질적 통치는 두 딸에게 맡기려는 타협책이었다. 제국과의 공존을 도모하는 봉건적 계약을 제안한 후 그는 곧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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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을 수 없는 치욕과 설움을 겪은 부족민들은 복수를 외치며 분연히 떨쳐 일어났다. 부디카 여왕이 능멸당한 두 딸과 함께 전차를 몰고 전장을 누비며 로마군에 맞선 결사 항전을 고무했다. 부디카는 농기구를 들고 전장에 뛰쳐나온 부족민들을 향해 외쳤다.
"나는 지금 영웅적 조상을 가진 자로서 왕국과 재산을 되찾기 위해 싸우는 게 아닙니다. 나는 그저 보통 사람으로서 자유를 빼앗고, 우리의 몸을 때리고, 내 딸들의 순결을 빼앗은 자들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여기 군중과 함께 나온 한 여인일 뿐이오. 로마인들의 정욕은 너무나 심해서 나이 든 사람이나 처녀나 안 더럽혀진 몸이 하나도 없소."
직접 현장에 있지 않았던 타키투스가 부디카의 육성을 채록했을 수는 없다. 상상력을 발휘하여 로마군의 만행에 저항한 부디카의 마음을 문학적으로 재현하는 고대적 서술 방식일 뿐이다. 그럼에도 빼앗긴 자유를 되찾기 위해서 일개 보통 사람으로서 투쟁한다는 부디카의 육성은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린다.
◇팍스로마나의 어둠, 제국의 폭력
실제로 여왕 부디카는 여러 켈트 부족을 규합하여 격렬하게 저항했다. 부디카는 저항군을 조직하여 이미 로마군이 점령하여 주둔하고 있던 오늘날의 런던과 콜체스터 지역을 공격해서 다수의 로마군과 부역 세력을 도살하는 위력을 떨쳤다. 타키투스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 도륙당한 로마군 병력과 부역자의 수가 무려 7만에 달했다.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로마군이 그대로 물러날 리 없었다. 풍부한 전투 경험을 가진 로마 병력은 능란하게 창을 휘두르며 달려가서 부족민들을 도륙했다. "군대는 여자들에게도 자비도 베풀지 않았다. 짐을 끄는 가축도 창에 찔려서 시체 더미 위에 던져졌다." 현장에 있었던 사람에 따르면 8만의 영국인들이 도륙당할 때 로마 군인은 400여 명만 쓰러졌다고 타키투스는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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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은 말 그대로 황제의 나라를 의미한다. 거대한 영토의 나라가 한 사람의 지배로 들어갈 땐 필연적으로 독재와 폭정의 위험이 따른다. 묻지 않을 수 없다. 황제 없는 제국, 자유로운 민주적 제국이란 불가능한 꿈일까? 세계평화를 유지하고 범인류적 정의를 실현하는 제국이란 있을 수 없는가?
송재윤 캐나다 맥마스터대 역사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