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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학 칼럼] 대한민국과 이스라엘은 일종의 샴쌍둥이(the Siamese twins)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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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10. 26.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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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학 고려대 명예교수
이스라엘은 반드시 보복한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다. 보복하지 않으면 이스라엘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보복하지 않는다. 좌시하지 않겠다고만 거듭 반복한다. 그러나 보복하면 대한민국이 아니다. 이렇게 판이한 행동의 이스라엘과 대한민국이 서로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데 어떻게 샴쌍둥이일 수 있겠는가? 그러나 바로 이러한 중대한 차이를 넘어서면 어쩌면 샴쌍둥이일 수도 있지 않을까? 1970년대 한국이민자들이 뉴욕에서 그들의 초인적 부지런함 때문에 '동양의 유태인'이라는 빈정거림을 받기도 했지만 지금은 사라졌고 이제는 유대인들이 '중동의 한국인'이라는 농담이 나올 만하지 않을까?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거대한 아랍의 신정체제의 험한 바다 위에 떠있는 유일한 자유민주주의의 작은 섬과 같은 존재다. 대한민국은 언제나 '아시아의 작은 나라'로 인식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수차례의 전쟁과 학살을 경험하여 민족적 생존의 비극을 기억하는 이스라엘의 역사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기억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역사와 닮았다. 적대적 아랍 세계 속에서도 이스라엘은 미국의 도움으로 1948년 독립한 이후 오직 미국에 의존하여 탄생하고 생존한 중동의 유일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지구의 반대편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강대국가들에 둘러싸여 오랫동안 고통 받던 '작은 나라' 대한민국도 오직 미국의 도움으로 1948년 독립한 이후 거대한 공산주의의 적대적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섬 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이 두 국가는 오직 미국의 지원과 보호가 없었더라면 지구상에 존재하기 어려웠다. 두 나라는 미국에겐 일종의 샴쌍둥이 같은 존재다.

역사적으로 미국이 이스라엘의 독립을 인정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의 와중인 1917년 미국의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 대통령이 당시 영국의 발푸어 외무장관이 선언한 소위 발푸어 선언(the Balfour Declaration)을 인정한 것이었다. 그러나 윌슨이 주도한 1919년 파리평화회담은 패전국들인 독일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그리고 오스만 터키제국의 해체를 논의하고 새 국가들의 수립을 논의했다.

당시 미국에서 한국독립을 위해 외롭게 투쟁을 벌이던 이승만 박사가 파리에 가서 한국독립을 호소하려고 애를 썼지만 당시 미국 국무성은 이방인 이승만 박사에게 여권을 발급해 주지 않아 그의 시도는 좌절되었다. 당시 일본제국은 승전국에 속했으며 윌슨이 수립하려는 국제연맹의 상임이사국 중 하나였기에 일본제국 속의 한국 독립문제는 언급되지도 못했다. 그 후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 열린 최초의 영-미-소의 테헤란 정상회담을 앞두고 영-미-중간 1943년 말에 열린 카이로 회담에서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한국에 대한 국무성의 보고를 듣고 한국은 유럽에서 폴란드의 처지에 비견된다고 말했다.

그해 말 카이로회담에서 루스벨트 대통령은 영국의 처칠 수상과 중국의 장제스 총통과 함께 최초로 한국을 적당한 절차를 거처 독립시킨다고 최초로 선언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과 대한민국은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뒤 1948년에 가서야 미국주도로 창설된 국제평화와 안전을 위한 유일한 보편적 국제기구인 유엔에서 미국 주도하에 독립을 인정받고 탄생했다. 이처럼 대한민국과 이스라엘은 1948년 같은 해에 마치 샴쌍둥이(the Siamese twin)처럼 태어났다.

대한민국과 이스라엘은 중동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이라는 지구의 반대편에 있었지만 이스라엘은 적대적 아랍세계의 태풍 앞에서, 그리고 대한민국은 유라시아 대륙 공산주의의 적대적 위협 속에서 독립국가로 출범했다. 그 후 이스라엘은 중동의 적대적 아랍세계와 끝없는 '神들의 전쟁'(필자의 본지 2023년 11월 2일자, "중동에서 '神들의 전쟁'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참조)을 시작했으며, 대한민국은 한국전쟁이 증명하든 그칠 줄 모르는 세계 공산주의 진영의 침략의 위협 속에서 살아남았다. 그후 대한민국과 이스라엘의 생존전략은 동일했다.

그들의 생존전략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또 최고의 강대국인 미국에 편승(bandwagoning)하는 것이었다. 미국은 지구 반대편의 작은 나라인 대한민국과 이스라엘을 '포섭'하여 사실상 그들을 위한 유일한 보안관이 되었다.

대한민국은 전후 처음엔 미국에게 군사전략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그리하여 1950년 초 애치슨(Acheson) 국무장관은 미국의 군사적 방위선(Defense Parameter)에서 대한민국을 제외시켰다. 그러나 한국전쟁 후 대한민국은 미국에게 정치적으로 중요한 국가로 재평가되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은 당시 치열한 이념적 대결의 냉전체제 속에서 정치적으로 중대한 반공국가로 인식되고 군사적으로 자유진영의 전진기지로 격상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1954년 발효된 대한민국의 이승만 대통령과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체결한 한미상호안보조약으로 미국은 거의 일방적으로 대한민국을 보호하는 동맹국이 되었다. 그 후 닉슨 대통령이 주한미군을 축소하고 카터 대통령이 일부 주한미군을 철수시켰지만 한미 상호동맹체제는 흔들림 없이 유지되었다. 냉전체제의 종식 이후에도 한미동맹체제는 변함이 없었다. 다만 자유세계의 전진기지라는 군사전략적 이유에다가 점차로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의 공유를 추가로 강조하게 되었다.

이스라엘은 1956년 수에즈 운하 사건으로 발발한 제2차 중동전쟁에서 과거 중동의 위임 통치 국가들이던 영국과 프랑스의 적극적 지원을 받았으나 이 전쟁에서 영국과 프랑스는 제국주의 정책에 비판적인 미국의 반대로 성공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 전쟁의 주도국이었던 영국의 앤소니 이든 정부가 몰락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전쟁에서 실패한 영국과 프랑스는 전통적 강대국의 지위를 상실했다. 오직 미국과 소련의 두 강대국으로 이루어진 국제적 양극체제가 명백해졌다. 그러나 1967년 6일간의 제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의 빛나는 승리는 미국으로 하여금 중동에서 공산주의의 침투를 막기 위해 미국은 영국과 프랑스가 떠난 후 그곳에서 힘의 공백을 메꿀 수밖에 없었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범세계적인 소련 공산제국의 봉쇄정책에서 중요한 전략적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하게 된 또 하나의 중대한 이유는 이스라엘이 중동에서 유일하게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미국에게 군사 전략적인 가치뿐만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공유하는 중대한 사실상(de facto)의 동맹국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에게 지구 반대편의 이스라엘과 대한민국은 각각 어떤 국제정치적 의미를 갖는 것일까? 우선 이스라엘 지원은 해양국가인 미국에게 유라시아 대륙에서 석유의 공급지역으로 일종의 지정학적 심장지역(heartland)인 중동세계에 안정된 우방국가 확보를 의미하게 된 것이다. 그럼으로써 미국은 이 지역에 대한 지정학적 역외 균형자(an offshore balancer)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리고 미국은 이스라엘과 분열된 아랍세계에서 일종의 중재자(arbiter)의 지위를 확보한 셈이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도 미국은 한미동맹체제와 주한미군의 유지를 통해 대한민국에 대한 북한의 소위 사회주의 형제국들인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는 재침략 행위를 억제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한반도의 주변 강대국들 간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역외 균형자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이 지역에서 영토적 야심이 없이 오직 힘의 균형을 통해 지역적 안전의 유지를 원하는 국가는 오직 대한민국과 미국이라는 두 국가 뿐이라는 사실에서 두 나라의 국가이익이 일치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과 이스라엘은 미국과의 관계에서 전략적 가치와 정치적 가치의 공유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으로 중대한 차이가 있다. 대한민국과 미국의 관계는 가치의 공유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대한민국을 일방적으로 미국의 보호하에 있었던 반면에 이스라엘의 경우엔 미국이 지원국에 머물렀다. 더 나아가서 이스라엘은 미국사회에서 막강한 유대인들의 강력한 로비활동으로 선거 때가 되면 어느 대통령 후보나 현직 대통령도 이스라엘의 지원을 미리 선언하고 나선다. 과거 트럼프 공화당 대통령 재선후보도 그가 대통령이 다시 되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즉시 중단할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이스라엘은 100% 지원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처럼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은 거의 무조건적이고 거의 절대적이다. 반면에 대한민국은 역사적으로 이런 무조건적이고 거의 절대적인 지원을 받지 못했다. 대한민국에 대한 미국의 안전보장은 동맹국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변화하는 정책에 민감하게 대응해야 하는 불안정한 성격에서 탈피하지 못했다. 이제 트럼프가 다시 미국의 대통령으로 복귀함으로써 한미관계는 거친 파도에 휩싸이게 되었다. 쌍둥이라지만 미국으로부터 각자가 받는 대우는 이렇게 크게 다르다.

대한민국과 이스라엘은 국가적 탄생과정에서뿐만 아니라 현 지구적 국제정치의 상황에서 미국이라는 매개를 통해 전략적이고 정치적 가치를 공유하는 세계사적 샴쌍둥이 같은 위치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과 이스라엘은 가까이하기엔 지리적으로 너무 멀다. 대한민국은 이스라엘과 긴밀한 전략적 관계를 발전시키기에는 석유 수출국들인 아랍세계와의 관계가 아주 중요하고 이스라엘도 지리적으로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대한민국도 강대국들과 인접하고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과 이스라엘은 국제적 압력에 맞설 만한 세계적 강대국가도 아니다. 그들에겐 행동의 자유가 없다. 그러나 21세기 이란을 힘의 중심부로 한 아랍세계가 대한민국과 이스라엘이 다 같이 생존을 위해 편승하고 있는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의 국제적 질서에 중국과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팍스 이슬라미카(Pax Islamica)를 구축하려고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다.

이런 국제정치적 변화 속에서 대한민국과 이스라엘은 미국과의 관계를 축으로 그들의 관계를 마치 샴쌍둥이처럼 상호 간 보다 긴밀한 전략적 동반자관계로 격상시킬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이스라엘이 수행하는 별들의 전쟁과 대한민국이 수행하는 지정학적인 투쟁은 근본적으로 어울릴 수 없는 것일까? 1960년대 이후 대한민국과 이스라엘 양국은 특히 자유 무역협정을 체결하여 경제와 산업에서 그리고 방산 분야에서 협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과 이스라엘의 샴쌍둥이 같은 닮은 점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결코 샴쌍둥이가 될 수 없다. 국제정치는 본질적으로 낭만적이거나 생물학적 세계가 아니라 지정학적 투쟁의 세계다. 또한 국제정치의 본질은 군사적 동맹에 있다. 대한민국과 이스라엘은 결코 군사적 동맹국이 될 수 없다. 만일 그런 동맹이 맺어진다면 대한민국은 부상하는 방대한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을 공식적으로 적으로 간주하는 꼴이 될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은 대한민국과의 동맹을 체결할 경우 중국과 러시아를 잠재적 적대국으로 선언하는 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한민국과 이스라엘 간 군사전략적 관계의 진전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이뿐만 아니라 국제정치의 세계에선 형제국들도 결국은 자국의 안보이익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양국은 각자가 군사동맹국처럼 행동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양국은 직접 결정적으로 도울 능력이나 의사가 아직은 없다. 샴쌍둥이는 양국을 묶어 지칭하는 감상적 표현일 뿐이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강성학(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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