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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고위 관료는 우리의 부동산 세제에 대해 이렇게 잘라 말했다. 그의 견해에 반박하는 국세청 직원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세제 개편 권한을 지닌 기획재정부도 마찬가지일 게다. 더 나아가 부동산 관련 세금에 관심을 좀 가진 국민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의 부동산 세제는 해도 너무할 정도로 복잡다기(複雜多岐)하다. 국세청 직원이나 세무사들도 부동산 관련 세금 질문을 받으면 먼저 세법 편람 등을 펴본다.
보유 부동산을 처분하거나 새로 매입하는 경우 국민은 누구나 매우 간단하고 쉽게 자신이 부담해야 하는 세금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시장 왜곡이 없다. 과세 과정에서의 논란이나 다툼도 없다. 이렇게 되면 부동산 거래에 모두가 부담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세법을 들여다봐야 정확한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면 이는 투명성 확보 차원에서 곤란하다. 앞서 견해를 제시한 국세청 관료는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부동산 세제를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부동산 대책의 처음이 될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이재명 정부 들어 3차례 부동산 안정 대책이 최근 나왔다. 불과 4개월 만에 특정 목적의 대책이 연이어 나왔다는 것은, 정부가 근본적 대책 마련에 실패했음을 인정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부동산 대책에 관한 한 이 정부도 과거 정부와 마찬가지로 할 말이 없다. 정치하게 짜인 정책을 바탕으로 미래를 내다보면서 국가 운영 시스템과 제도를 만들어가야 하는데, 처음부터 시장친화적인 대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아무리 극약 처방을 내놓아도 수도권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부동산 가격은 우상향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부동산을 갖지 못한 청년층이나 저소득층은 천정부지로 치솟는 아파트값을 보며 허탈함을 금치 못하고 있다.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청년층은 내 집 마련이 물 건너갔다고 한탄한다. 제아무리 사회생활이 힘들더라도 근로소득만으로 내 집을 장만할 수 있는, 예측 가능한 사회에서 살고 싶다는 게 청년층의 바람일 것이다. 결혼을 앞둔 청년층은 치솟는 집값과 전월세 가격 급등에 몸서리를 치고 있다. 갓 결혼한 대기업 근무 30대는 집을 구하지 못해 아내의 자취방에서 신혼을 시작했다. 출퇴근에 3시간 이상을 소비하면서 직장에서 멀리 멀리 떨어져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청년층이 적지 않다.
이 모든 것은 정치적 논리에 따라 시장 질서를 왜곡해 온 정책 탓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표를 의식한 정책, 선심성 정책을 기반으로 살아 있는 생물체 같은 시장에 접근한 역대 정부의 실패 때문이다. 정확한 시장 파악에 굼떴고 공급과 금융·세제 등 3대 부동산 시장 대책을 균형 있게 적용하는 데 게으름 피운 탓이다.
정부가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면서 종합부동산세(종부세) 등 보유세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누더기 세제를 더 누더기로 만들까 겁난다. 보유세를 올려 부동산 보유 부담을 높이면 시장에 매물이 많이 늘어날 것이라고 정부는 판단하고 있다. 구윤철 기재부 장관은 50억짜리 부동산에 미국처럼 1%의 보유세를 물리면 연간 5000만원을 부담하면서 살 수 있는 계층이 급격히 줄어 결국 매물이 늘어날 것이라고 공언했다. 구 장관이 기재부에서 성장한 인물이니 세금만으로는 집값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집값 안정은 공급과 금융·세제가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뤄야 가능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음은 물론이다.
정부 여기저기에서 보유세 부담을 늘리는 게 마지막 처방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내년 지방선거를 의식해 세 부담 증가 대책을 뒤로 미루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현 정부의 국정 운용 모습을 보면 그리 머지않은 장래에 세 부담을 늘리는 쪽을 택할 가능성은 커 보인다.
보유세는 거래세와 맞물려 탄력적으로 운영돼야 옳다. 구 장관이 예로 든 미국과 주요 선진국의 경우 거래세가 없다. 중산층의 증여·상속세 부담도 없다. 기준시가나 공시지가 등 실거래가를 왜곡하는 기준도 없다. 우리와는 세제 자체가 완전히, 근본적으로 다르다. 보유세로 집값을 잡으려 한다면 거래세와 증여·상속세 제도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 장기간에 걸친 연구와 공청회, 여론 수렴 등 절차를 거쳐 종합적으로 세제를 개편해야 한다. 그런 과정이 없이 당장 급한 불을 끈다면서 한쪽만 손대면 더 큰 부작용을 피할 수 없다.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세제는 더 누더기가 되어갈 공산이 커졌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국가 발전을 위한 비전을 토대로 온 국민이 관심을 갖고 있는 부동산 세제를 충분한 시간을 갖고 천천히, 꼼꼼히, 그리고 면밀히 근본부터 점검해 합리적이며 단순하며 누구라도 알 수 있는 항구적이고 변치 않는 세제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경욱 논설심의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