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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무대, 천 개의 이야기… ‘월드 2인극 페스티벌’ 25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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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찬 선임 기자

승인 : 2025. 11. 03. 08:21

2000년 첫 회 이후 842편의 기록, 인간관계의 본질을 탐구한 25년의 여정
대학로에서 다시 만나는 100편의 2인극, ‘소통’으로 이어지는 예술의 시간
2인극
'제25회 월드 2인극 페스티벌' 홍보 포스터. 숫자 2 오브제를 사이에 둔 김진만 조직위원장(왼쪽)과 김진만 공동조직위원장(가운데), 유태웅 집행위원장, 문삼화 예술감독(오른쪽)이 올해 슬로건 '천 개의 2인극을 향하여'를 상징하는 포즈를 취했다. 두 김진만은 동갑내기 동명이인으로, 한때 포털 인물정보에서 배우자 정보가 뒤바뀌는 해프닝이 있었다. / 월드 2인극 페스티벌 제공
인간과 인간이 마주 선 자리, 그 거리가 연극의 시작이다. 두 사람이 함께 서는 무대는 언제나 연극의 가장 단순하고도 근원적인 형태였다. 말과 시선, 호흡이 만들어내는 미세한 긴장 속에서 관객은 인간 존재의 본질을 목격한다.

'제25회 월드 2인극 페스티벌'은 바로 그 순간을 다시 불러낸다. 오는 11월 2일부터 23일까지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열리는 이번 축제는 '천개의 2인극을 향하여'를 주제로 25주년을 맞이한 여정을 기념한다. 행사는 마로니에공원 다목적홀, 예술공간 혜화, 창조소극장, 극장 동국 등 부문별 공연장에서 펼쳐진다.

2000년 첫 회를 연 이후 '월드 2인극 페스티벌'은 인간관계의 최소 단위를 탐구하는 무대로 자리 잡았다. 제24회까지 총 842편의 2인극이 무대에 올랐고, 올해 100편이 더해지면 제26회까지 1,000여 편에 이르는 기록이 완성된다. '천개의 2인극'이라는 주제는 단순한 수적 목표가 아니라, 서로 마주 선 두 인물의 관계 속에서 사회와 시대,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예술적 실험의 상징이다. 2인극은 배우의 언어와 호흡, 침묵만으로 긴장과 서사를 완성하는 형식으로, 연극이 가진 본질적 힘을 가장 밀도 있게 보여주는 장르로 평가받는다.

올해 페스티벌은 공식참가작 12편, 기획초청작 4편, 해외초청작 2편, 특별참가작 2편, 시민참가작 28편, 대학참가작 52편 등 총 100편으로 구성된다. 각기 다른 세대와 층위의 작품들이 인간관계라는 공통 주제 아래 모여, 관계의 다양성과 감정의 변주를 무대에 펼친다.

공식참가작은 예술공간 혜화와 창조소극장에서, 기획초청작은 창조소극장과 예술공간 혜화에서, 해외초청작은 예술공간 혜화에서, 시민참가작은 창조소극장에서, 대학참가작은 극장 동국에서 공연된다. 올해는 시민과 대학 부문을 통해 예술 참여의 폭을 한층 넓혔다. 시민참가 부문은 생활예술인의 자발적인 무대 참여로, 대학참가 부문은 젊은 창작자들의 실험적 시도를 통해 2인극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장한다. 해외초청작 2편은 관계의 보편성을 국제적 시선으로 조명하며 축제의 외연을 넓힌다.

작품
'제25회 월드 2인극 페스티벌' 공식참가작 및 기획초청작 포스터. 시계방향으로 '호텔엔젤', '갈매기 비밀 리허설', '갱지', '동화는 끝나지 않는다'. 11월 2일부터 23일까지 대학로 예술공간 혜화와 창조소극장 등에서 공연된다. / 월드 2인극 페스티벌 제공
'월드 2인극 페스티벌'의 역사는 곧 한국 연극의 실험사이기도 하다. 초창기에는 번역극과 창작극을 넘나들며 2인극으로 가능한 소재를 발굴했고, 중반기에는 '육담과 골계' '특별한 만남' '창작 2인극 작품전' 등 다양한 형식을 시도하며 축제의 틀을 확장했다. 이후 '명작을 만나다' '희망을 찾다' '변화와 융합' 등을 통해 창작극 중심의 색채를 강화했고, 10주년을 맞은 시기에는 시민 참여형 릴레이 공연으로 축제의 대중성을 넓혔다.

제16회에는 '한국 국제 2인극 페스티벌'이라는 명칭으로 새롭게 도약하며 국제 교류의 문을 열었다. 이후 '조화와 상생', '통찰과 연결' 등 주제를 통해 시대의 관계성과 예술의 확장성을 모색했고, 팬데믹 시기에는 '콘택트와 언택트'를 주제로 현장 공연과 온라인 상영을 병행하며 공연 방식의 전환을 실험했다. 이어 '관조와 실천', '2의 향연', '깊고 넓게 2인극', '행복한 동행'으로 이어진 주제들은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도 2인극이 지닌 '소통'의 본질을 지켜 온 여정을 보여준다.

그동안 이 축제를 통해 '흑백다방', '노인과 바다', '씨름사절단', '가정식 백반 맛있게 먹는 법', '정씨 여자', '달빛 속의 프랭키와 쟈니' 등 여러 작품이 재공연되며 2인극 레퍼토리가 풍성해졌다. 25년간 쌓인 이 성과는 연극계의 귀중한 자산이자, 배우 중심의 무대 언어를 복원한 성취로 평가된다.

올해 역시 2인극의 본령은 '관계'에 있다. 두 사람의 대립과 화해, 권력과 사랑, 진실과 오해가 만들어내는 감정의 흐름 속에서 관객은 자신을 비춘다. 소극장은 배우의 에너지와 관객의 감정이 직접 맞닿는 공간이다. 조명 하나, 숨소리 하나까지 공유되는 그 거리에서 2인극은 거대한 장치보다 더 큰 울림을 남긴다. '천 개의 2인극'은 곧 천 개의 감정이자, 천 번의 마주봄이다.

이번 축제는 2인극 페스티벌 조직위원회가 주최하고, ITI국제극예술협회한국본부가 주관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대한민국공연예술제 지원사업'과 (사)한국연극협회가 후원하며, 서울연극협회와 한국극작가협회, 한국연출가협회 등 연극계 주요 단체들이 협력한다.

조직위원회는 김진만 조직위원장, 김진만 공동조직위원장, 유태웅 집행위원장, 문삼화 예술감독을 중심으로 운영되며, 평론·기획·연출·제작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축제를 이끌고 있다. 이들의 꾸준한 헌신이 25년의 시간을 지탱해 온 원동력이다.

'월드 2인극 페스티벌'은 순수 민간단체가 25년간 이어온 보기 드문 사례로, 예술적 완성도와 대중적 접근성을 동시에 추구하며 발전해 왔다. 축제는 과거를 기념하는 동시에 다음 천 개의 이야기를 향한 여정을 이어간다. 대학로의 무대에 다시 불이 켜지면 두 명의 배우가 또 하나의 관계를 만들어내고, 관객은 그 관계의 언어 속에서 자신을 마주한다. 그렇게 쌓인 수많은 무대가 이 축제가 걸어온 25년의 역사이며, 내일의 천 편으로 이어질 서사다.
전형찬 선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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