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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에 들려주는 지구인의 세계사] 2000여 년 지속되는 제국의 시대, 세계는 과연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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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11. 02. 17:35

외계인에 들려주는 지구인의 세계사 <6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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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윤 맥마스터대 역사학과 교수
지구인의 세계사는 제국의 출현 이전과 이후로 극명히 나뉜다. 제국 형성 이전 지구인의 대다수는 소국가의 한정된 영토에 붙박인 채 살아갔다. 제국 형성 이후 지구인 대다수는 여러 지역이 결합한 넓은 영토에서 황제의 신민이자 제국의 시민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인류의 정치사에 황제라는 지존(至尊)의 지위가 생겨난 이유는 단지 권력 집중이 강화되고 인격 숭배가 만연했기 때문이라기보단 광활한 대륙이 하나의 정부 아래 통합되었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제국적 질서를 달리 표현하면 여러 지역을 정치적으로 규합하고, 경제적으로 연결하고, 문화적으로 혼합하는 문명적 통합이라 할 수 있다.

◇2000여 년 지속되는 제국의 시대

진시황은 과거에 존재하던 수많은 지방 정권을 모두 무너뜨려 중앙집권적 행정 체제 속에 편입시켰다. 로마제국 역시 원칙적으론 일부 지역을 다스리는 세습적 왕정을 인정하지 않았다. 새로 편입된 변방엔 그 지역을 다스리는 군왕(君王)을 두는 경우가 있었지만, 이때 지역의 군왕은 황제의 임명을 받아야만 했다. 제국이란 여러 지역을 지배하는 다양한 정권을 아우르는 단일한 행정 체제를 말한다.

진·한 제국은 중화 대륙을 평정하여 하나의 행정 체제 속으로 편입시킨 통합적 질서였다. 이탈리아반도 중앙의 작은 도시국가에 불과했던 로마가 기원전 1세기 말 유럽, 소아시아, 북아프리카를 통째로 아우르는 거대한 세계 제국으로 발돋움했다.

광활한 중원을 통일하여 일어난 진·한 제국은 국경선을 넓혀서 변방에 만리장성을 쌓고, 행정망을 단일화하고, 도량형을 통일하고, 수렛길을 규격화하고, 문자를 통일했다. 진시황의 법가식 공포 통치가 실패하자 한무제는 유가 경전을 국서로 채택하고,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보편 이념을 표방하여 화하(華夏) 문명의 정신으로 삼았다. 중화 제국이 보편적 가치를 지향했기에 그 변방에선 유교를 숭상하는 번국(藩國)들이 창성할 수 있었다.

지중해를 끼고 펼쳐진 광대한 영토를 다스리기 위해서 로마 황제들은 도로망을 구축하고, 도수관(導水管)을 연결하고, 원거리 교역로를 개발했다. 아울러 종족의 차이를 넘어 전 지역에 고르게 적용되는 로마법을 제정해서 반포했으며, 국의 전 지역 주민에게 로마 시민권을 부여했다. 제국의 통합된 질서 아래서 라틴어는 당대 엘리트 계층의 보편언어가 되었고, 로마의 건축술과 토목 공학은 전 유럽에 직접적 영향을 끼쳤다. 로마인들은 스스로 변방의 야만인을 일깨워 문명인으로 길러주는 문명사적 임무를 수행한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 점에서 2000여 년 전 유라시아 동서에서 시작된 제국의 시대는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진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 이후 지구인의 역사는 고대 제국을 역사의 전범으로 삼아 점진적으로 더 큰 통합적 질서를 구축해 갔기 때문이다. 작금의 국제 정세를 보면 과연 제국의 시대가 끝났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 오늘날도 양대 진영으로 갈라진 지구인의 삶은 고대 제국의 영향 아래 그대로 놓여 있는 듯하다.

18세기 후반 대청제국의 세계지도
18세기 후반 대청제국의 세계지도. /공공부문
◇민족적 제국주의, 제국적 민족주의

100년 전만 해도 지구인들은 제국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었다.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러시아, 일본 등 앞다퉈 산업화에 성공한 소수의 세계열강은 아시아, 아프리카, 태평양 지역으로 뻗어나가 식민지를 개척하는 각축전을 벌였다. 제국주의 열강은 대내적으론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국민 중심의 민족주의(nationalism)를 고취했는데, 대외적으론 미발달 지역을 문명화하는 범인류적 명분과 책무를 내세워 군사적·경제적 팽창주의를 합리화했다.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앞다퉈 식민지를 개척했던 강대국은 민족의 영광을 위해 제국적 팽창을 추구했던 '민족적 제국주의(national imperialism)' 혹은 '제국적 민족주의(imperial nationalism)'에 사로잡혀 있었다. 자유, 문명, 인권, 통상, 기독교 등의 보편 가치의 기치를 들고서 "백인의 책무(the White's Man's burden)"를 강조했던 대영제국의 밑바탕엔 "팍스 브리태니커"를 염원했던 영국 민족주의가 놓여 있었다. 이후 대동아공영권의 깃발을 내걸고 서구열강에 대항하는 범아시아주의를 제창했던 일본제국의 이데올로그들 역시 일본을 위대하게 만들려는 야마토 민족주의에 매몰돼 있었다. 19~20세기 서구 열강에서 발원한 민족주의는 그렇게 제국주의적 팽창의 심적 동기이자 숨겨진 의제였다.

세계열강의 각축전은 무려 1억명의 인명을 살상한 1, 2차 세계대전으로 귀결됐다. 그 결과 2차대전 이후 제국의 시대는 일단 표면상 막을 내렸다. 1945년부터 30년에 걸쳐서 세계 전역에선 탈식민화(decolonization)의 시대가 펼쳐졌다. 1947년 인도, 1949년 인도네시아, 1957년 가나가 독립을 얻었고, 1960년대 아프리카 대륙의 여러 나라는 독립의 도미노를 이어갔다. 1975년 앙골라, 모잠비크 등 포르투갈의 식민지들도 독립할 수 있었다.

◇다가오는 글로벌 제국의 시대

2차대전 이후 30년간 전개된 탈식민화의 물결만 보면 '제국의 시대'가 저물었음이 분명해 보이지만, 제국의 시대를 거치면서 두 차례의 참혹한 세계대전을 치르고 나서도 지구는 두 진영으로 나뉘어 다시 반세기 동안 냉전의 시대 겪어야 했다.

오늘날 전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조밀하게 얽히고 엉켜 있는 새로운 통합적 질서 속에 들어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세계 거의 모든 지역이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실시간 의사소통, 정보 이동, 금융거래가 일어나고 있으며, 물류 이동과 인적 교류도 100년 전보다 비할 바 없이 활발하다.

세계는 지금 최첨단 통신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상상을 절하는 촘촘한 네트워크로 더욱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학계와 언론계에선 세계화, 지구화, 국제화 등등의 다양한 개념으로 그러한 지구촌의 유기적 통합을 설명하려 한다.

오늘날 세계화, 지구화, 국제화를 유지하고 촉진하는 통합적 질서의 기원을 추적해 보면, 고대의 제국적 질서로까지 소급된다. 2차대전과 더불어 표면상 제국의 시대는 끝이 났건만, 오늘날의 현실을 보면 더 강력한 세계 제국이 출현하여 세계를 하나의 망으로 결속하고 있다.

1991년 구소련의 붕괴로 냉전의 시대가 끝났는가 싶었는데, 공산당 일당 독재의 중국이 세계 2위의 경제 규모를 달성하고서 "일대일로(一帶一路)"의 구호 아래 새로운 세계 질서를 구축하려 하고 있다.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국제 질서와 중국·러시아가 주도하는 전체주의 동맹이 다시금 세계를 양분하는 형세다. 제국의 시대는 과연 끝이 났는가? 끝나기는커녕 이제 새롭게 출발할 태세인 듯하다.

모름지기 이념으로서의 제국이란 광활한 영토에 흩어져 사는 구성원 모두가 한 정부 아래서 공평무사한 법의 지배 아래 놓인 대규모의 정치적 공동체를 이른다. 그 점에서 여전히 진행 중인 세계화의 종착지는 전 지구적 통합 질서의 구축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전 지구를 아우르는 세계 제국의 출현은 과연 불가능한 꿈인가? 그 꿈의 실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무엇일까?

송재윤 캐나다 맥마스터대 역사학과 교수

19세기 후반 대영제국 지도
19세기 후반 대영제국 지도. /위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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