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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며칠 전 필자의 감각을 전율시키는 문화현장이 있었다. 영덕문화관광재단이 운영하는 예주문화예술회관의 연습실에서 10여 명의 여성이 모여서 그린 그림을 보고 완전 감동하였다. 각자가 2장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한 장은 산불이 나기 전 자신이 살던 집, 나머지 한 장은 불에 타 버린 집의 모습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었다. 산불에 타버린 자신의 집을 담담하게 그려나가는 그녀들의 모습이 너무 신성하게 보여서, 나는 숨을 죽이고 한참을 지켜보았다.
그중 한 사람의 집은 산불이 크게 휩쓸고 지나간 영덕군 지품면의 골짜기에 있었다. 산불이 마을을 덮치기 전에 안내방송에 따라 겨우 피신을 하여 마을에 인명피해는 없었다고 한다. 다만 남편과 함께 정성을 들여 지은 집과 마당의 농기계가 산불에 싹 타버렸다. 지금은 산불 잔해처리로 인해 타버린 집과 농기계는 깨끗이 철거된 상태라고 한다. 그래서 그때 찍어 두었던 사진을 보며 사라져 버린 옛집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고 담담히 이야기를 해 주었다.
"산불의 트라우마가 깊었을 텐데, 담담하게 말할 수 있는 그녀의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내가 품었던 이런 의문에 아마도 "동료들과 함께 꾸준히 그림을 그리는 힘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녀는 지난 몇 년간 영덕문화관광재단에서 하는 '어반 드로잉' 수업에 참여하면서 영덕의 포구와 지역의 오래된 건물, 버스정류장을 그렸다고 한다. 산불의 직격탄을 직접 맞았는데도 매주 2번씩 나와 그림을 그리는 것이 '삶의 즐거움'이라고 했다. 흔히들 예술의 유용한 효과로 '기억'과 '치유'를 꼽는데, 산불이 나기 전의 집과 마을을 그리면서 '즐거웠던 기억'을 되살리고, 산불 후의 모습을 그리면서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졌을 것'이다. 게다가 개인이 혼자만 하는 예술활동이 아니라,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하는 예술 활동인 만큼 동호회 구성원 간의 친밀감도 더 커져서 행복감과 안정감을 더 느꼈을 것이다.
지방소멸 지역이자, 대형재난이 덮친 지역에서 '예술'의 역할은 이런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매우 중요하다. 단기간에 지역의 경제를 부흥시킬 수는 없겠지만, 문화예술 활동으로 지역의 사회적 연결망을 강화시키고, 사람들의 고립감과 우울증을 해소시키며, 주민 삶의 의미를 회복시킬 수 있는 것이 '문화예술 활동'이다. 정부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지역문화진흥원을 통해 2014년부터 '생활문화사업'을 지원해 오고 있으며, 지역문화재단의 설립이 활성화되면서 전국적으로 주민 중심의 '문화예술 동호회'를 비롯하여 '생활문화사업'이 활발해지고 있다. 그 성과도 각종 설문조사와 보고서를 통해 증명되고 있다.
감히 말하건대, 지역민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문화예술 활성화이며, 지방소멸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역시 문화예술의 활성화이다. 지역 문화재단의 역량을 축제사업에만 집중적으로 투자할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직접 문화예술활동에 참여하는 생활문화사업 활성화에 투자하기를 적극 권하는 바이다. 주민들의 숨은 재능을 발견하는 것이 '예술로 지역활력'의 기본이다.
/문화실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