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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선 칼럼] 규제 폭주 한국, 어쩌면 상장폐지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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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11. 05.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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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역사적으로 지난 20~30년 사이에 사모펀드 업계가 크게 성장했다. 사모펀드가 투자도 하지만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기업 인수다. 특히 부실기업을 인수한 후 적절한 경영관리를 통하여 정상화 후 재매각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기업 인수 후에는 자발적으로 상장을 폐지하는 것이 관리하기 쉽다. 그래서 사모펀드 업계가 성장하는 현상과 나란히 지난 20~30년간 상장기업에서 비상장기업으로의 전환도 늘어나고 있다. 미국의 경우에도 델 컴퓨터, 버거 킹, 리더스 다이제스트, 왈그린 등이 상장을 폐지했다.

델은 사모펀드 실버레이크와 파트너십을 맺고 비상장기업으로 전환했다. 한국에서도 최근 사모펀드 한앤컴퍼니가 SK디스커버리로부터 SK디앤디의 지분 전량을 인수하면서 최대주주가 되었고, 시장에 남은 소액주주 지분을 공개매수하여 상장폐지를 진행하고 있다. 오스템 임플란트, 루트로닉, 쌍용C&E, 락앤락, 커넥티드웨이브, 제이시스메디칼, 맘스터치 등도 유사한 절차를 진행했거나 진행 중이다.

상장기업이 비상장기업으로 바뀌면 일단 퇴출되거나 정상화되기까지 시간을 벌 수 있고, 인재를 영입할 현금을 확보할 수 있으며, 피곤한 외부 간섭으로부터 벗어나 어느 정도 자유롭게 당면한 내부 문제에 집중할 수 있다. 사모펀드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은 매우 나쁘지만, 이와 같이 실적이 부진한 기업을 인수하여 관리하면서 재건하는 해결책(solution)을 제공하는 점은 사모펀드가 국가 경제에 기여하는 긍정적인 힘이다.

다만 때로는 오히려 퇴출되어 마땅한 좀비기업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는 역효과도 가져온다. 좀비기업에 일시 자금으로 수혈해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은 국가 경제 성장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비상장기업으로 전환하면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좋을까? 거래소와 금융감독원 등의 시시콜콜한 감독에서 벗어난다. 좋은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직원이 밤낮으로 매달려 쓸데없는 기업공시서류를 작성하느라 진을 빼지 않아도 되고, 그 직원이 조직 내부에서 다른 일을 엄청난 속도로 처리할 수 있다.

이사회 구조를 간단하게 만들어 회의 구조가 단순화되고, 화려하지만 값싼 장식품인 사외이사를 모셔오지 않아도 되며, 리스크 관리위원회, 감사위원회, 사외이사추천위원회, 보수위원회, ESG 위원회 따위의 실속 없는 공허한 위원회를 만들어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비상장기업이 되면, 다 그런 것은 물론 아니지만, 많은 경우 허울 좋은 이사회가 회사의 주인이 아니라, 내 기업이라는 애착을 가진 대주주와 직원이 회사의 주인이 되고, 직원 만족도는 도파민, 세로토닌, 엔도르핀, 옥시토신의 혼합물질의 분비와 함께 솟구친다. 주가를 신경 쓸 필요가 없어 애널리스트들의 기업분석과 평가에 관심 둘 필요도 없다.

2025년 상법 개정에 따른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같은 헛소리는 헛기침으로 치부하면 되고, 기업을 쉽게 자산 총액 2조원 미만으로 쪼갤 수 있어 주주총회에서 합산 3%룰 확대적용이나 집중투표와 같은 반시장주의·반자본주의적인 강행 규제들을 가벼이 피할 수 있다.

기업은 단기 이익과 배당에 몰두하기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사업 모델을 재정의하면서 핵심사업에 집중해 새로운 역량을 구축하고, 고객 보호에 만전을 기할 수 있다. 지배주주나 CEO, 종업원들이 기업가정신 또는 창업자정신을 발휘하기에도 비상장기업이 더 낫다. 일반적으로 비상장기업의 경우 주인의식, 책임의식, 의사결정의 속도, 리스크 감수 성향 등에서 상장기업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은 다수의 경영학자들이 밝혀낸 바 있다.

비상장 전환이 반드시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기업을 공공의 손에 맡겨두는 것보다 사적 관리에 놓음으로써 기업 참여자 모두에게 강한 자부심과 만족감, 더 큰 보상을 가져다주는 증거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미국 상장기업 수는 1970년대는 대략 2400~6000개, 1980년대는 5000~7000개, 1990년대는 7200~7900개(1996년에는 8090개), 2000년대와 2021년대는 4000~5000개, 2023년에는 5700개였다. 상장기업 수가 도무지 늘지 않고 오히려 줄고 있다. 한국 유가증권시장 상장기업 수도 2010년대 이후 800여 개에 머물고 있다.

한국에서는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이 되는 순간 약 94개의 규제 또는 불이익이 추가로 적용된다. 중견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하여 자산 규모 2조원이 넘으면 약 128개의 규제가, 5조원을 넘는 대기업은 329개 규제에 직면한다.

이러한 규제를 피하기 위해 사업부 쪼개기, 기업 분할, 매출 줄이기, 종업원 수 조작이나 사업 외주화, 해외 법인 설립 및 이전 등 합법적이고 기발한 수법이 동원된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규제는 쌓여가고 기업 환경은 점점 나빠져 간다. 특히 한국의 제21대 국회의 중대재해처벌법, 제22대 국회의 노란봉투법,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 집중투표제, 감사(위원)선임 시 합산 3%룰 등 국회의 입법폭주는 노조법을 엉터리 법으로, 상법을 잡법으로 만드는 역사에 남을 오점을 남겼다.

이런 돌덩이 규제는 대체로 피할 수 없지만 상장이라도 폐지하면 조금은 숨 쉴 공간이 있게 된다. 한국거래소(KRX)에 따르면, 2025년 1월부터 9월 중순까지 총 62개 기업이 상장이 폐지되었으며, 이는 전년도(2024년)의 69건에 근접한 수치다.

자본과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유를 찾아 움직인다. 기업이 정체 상태에 빠졌을 때 여러 가지 구조조정을 생각하게 된다.

그중 가장 효과가 가장 확실한 것이 상장폐지라고 할 수 있고, 상장폐지의 효과는 생각보다 대단히 좋을 수 있다. 기업과 경영진에게 가장 큰 자유를 주기 때문이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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