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9000송이 카네이션 위에 펼쳐진 삶의 희로애락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20251110010004512

글자크기

닫기

전혜원 기자

승인 : 2025. 11. 10. 10:20

25년 만에 돌아온 피나 바우슈의 명작 '카네이션'
탄츠테아터 부퍼탈, LG아트센터 서울 공연 "삶에 대한 깊은 성찰 담겨"
[LG아트센터] 피나 바우쉬의 카네이션 LG Arts Center Studio AL 9 (1)
피나 바우슈의 '카네이션' 중 한 장면. /LG아트센터 서울
25년의 기다림 끝에 다시 만난 피나 바우슈의 '카네이션'은 여전히 압도적이었다. LG아트센터 서울 무대 위를 가득 메운 9000송이의 분홍빛 카네이션은 그 자체로 장관을 이루며,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2000년 LG아트센터 개관 당시 한국 관객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던 이 작품은, 한 세대가 지난 지금도 그 예술적 강렬함을 잃지 않았다.

공연은 무용이라기보다 연극에 가까웠다. 무용수들은 기이하게 춤을 추거나, 괴성을 지르기도 하고, 수어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들은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넘나들며 관객과 직접 소통했다. 이것이 피나 바우슈가 창조한 '탄츠테아터'의 본질이다. 춤과 연극, 음악과 일상의 몸짓이 하나로 녹아든 이 독특한 형식은 40년이 넘은 작품임에도 여전히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작품은 삶의 다양한 모습들을 담아냈다. 당혹스러움, 분노, 공포, 사랑, 유머…. 무대 위에서 펼쳐진 것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희노애락의 모든 감정이었다. 특히 고통과 분노로 가득한 인간 삶의 사실적인 묘사는 불편할 만큼 날것 그대로였다. 군화를 신은 남성이 카네이션 밭을 행진하는 장면에서는 억압과 통제의 현실이 묵직하게 전해졌다.

[LG아트센터] 피나 바우쉬의 카네이션 LG Arts Center Studio AL 9 (3)
피나 바우슈의 '카네이션' 중 한 장면. /LG아트센터 서울
공연 내내 흐르던 음악은 탁월했다. 각 장면의 감정을 증폭시키며 작품의 정서적 깊이를 더했다. 음악과 움직임, 그리고 무용수들의 표현이 만들어낸 조화는 피나 바우슈가 왜 현대무용의 혁명가로 불리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공연의 마지막이었다. 무용수들은 관객 모두를 일어서게 한 뒤, 스스로를 안아주는 동작을 취하게 했다. 객석으로 내려온 무용수들이 관객을 직접 안아주는 순간, 공연장은 묘한 감동으로 가득 찼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지나듯 인간의 삶도 그러하다는 것을. 고통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피나 바우슈는 이 마지막 장면을 통해 관객에게 깊은 위로를 전했다.

[LG아트센터] 피나 바우쉬의 카네이션 LG Arts Center Studio AL 9 (10)
피나 바우슈의 '카네이션' 중 한 장면. /LG아트센터 서울
다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무용수들이 한국어로 관객에게 말을 거는 장면에서, 다소 어색하고 부정확한 발음과 억양이 공연 몰입을 방해했다. 피나 바우슈가 각국의 관객과 소통하고자 했던 의도는 이해하지만, 차라리 자막을 활용했다면 작품의 메시지가 더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공연이 끝날 무렵, 처음 만개했던 카네이션 밭은 짓밟혀 흩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 위에 남은 것은 허무가 아니라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었다. 25년 전 이 작품을 봤던 관객들에게는 추억을, 처음 접하는 관객들에게는 새로운 감동을 선사한 '카네이션'은 피나 바우슈의 유산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증명했다. 이번 공연은 14~15일 세종예술의전당 무대에도 오른다.

[LG아트센터] 피나 바우쉬의 카네이션 LG Arts Center Studio AL 9 (12)
피나 바우슈의 '카네이션' 중 한 장면. /LG아트센터 서울
전혜원 기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