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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만난 한 바이오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세계 최대 제약·바이오 행사인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JPM)는 매년 글로벌 자본과 기술의 향방을 가늠하는 바로미터로 꼽힌다. 한국 기업들의 존재감도 분명해졌지만, 무대의 중심이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는 현장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명확하다. '중국 바이오 굴기'가 더 이상 예고편이 아닌 본편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중국은 이미 차세대 항암 기술의 핵심으로 떠오른 ADC(항체-약물접합체) 분야에서 선두 그룹으로 분류된다. 2023년 기준 중국 기업들의 ADC 기술 수출 계약 규모는 29조원을 넘어섰다. ADC에 그치지 않는다. 유전자 편집 기술, 방사성의약품치료제(RPT) 등 차세대 치료제로 불리는 영역에서 중국은 '없는 후보물질을 찾기 어려운' 나라가 됐다.
이 같은 바이오 굴기의 배경에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자리하고 있다. 중국은 '메이드 인 차이나 2025'를 통해 신약 개발 생태계를 국가 전략 산업으로 끌어올렸다. 2010년대 중반만 해도 2~3년이 걸리던 신약 심사 기간은 2025년을 목표로 평균 9개월 수준까지 단축됐다. 대규모 바이오 클러스터를 조성해 연구·임상·생산 역량을 집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면 한국의 현실은 대비된다. 2021년 신속심사제도가 도입됐지만, 실제 허가까지 400일 안팎이 소요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심사 기준이 일관되지 않고, 해석이 들쭉날쭉하다는 불만도 업계 곳곳에서 나온다. 제도는 있지만 체감 속도는 여전히 느리다는 것이다.
세제 지원 격차는 더욱 뼈아프다. 중국은 기업이 투입한 연구개발(R&D) 비용의 최대 두 배에 해당하는 금액을 소득세에서 공제해준다. 반면 한국 바이오 대기업이 받을 수 있는 R&D 세액 공제율은 최대 40% 수준에 그친다. 중국과 비교하면 체감 공제 효과는 5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제네릭(복제약) 약가 제도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제약사 수익성에 직격탄이 될 것이란 우려가 크다. 수익성이 낮아지면 R&D 비중을 줄일 수밖에 없고, 투자 격차는 곧 사업 성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제약사들이 신약 개발 비중을 늘리고 있는 상황에서 정책 기조는 오히려 규제 강화 쪽으로 기울고 있어,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이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중국 바이오 굴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다. 정부가 먼저 위험을 감수하며 투자 마중물을 부었고, 기업들은 그 위에서 공격적으로 파이프라인을 쌓아 올렸다. 반면 한국은 구심점이 돼야 할 정부가 여전히 뚜렷한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해 왔다. 대통령 직속 국가바이오위원회와 국무총리실 산하 바이오헬스혁신위원회가 이원화되며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탓이다. 다행히 범부처 바이오 육성 기구를 하나로 통합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이제 관건은 정부가 얼마나 일관된 지원과 실행력을 보여주느냐다. 바이오 경쟁은 시간이 쌓이는 산업이다. 방향을 잃은 채 버티기에는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