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와 ‘전국’을 동시에 관리하는 비즈니스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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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이라는 운영 모델
전북현대는 흔히 '강팀'으로 불린다. 그러나 스포츠 비즈니스의 시선으로 보면 전북은 강팀이라는 결과보다, 그 결과를 반복 가능하게 만드는 운영 구조가 먼저 보이는 구단이다. 우승의 횟수나 특정 시대의 스타를 열거하는 방식으로는 전북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다.
전북이 남긴 진짜 유산은 "강함을 반복할 수 있는 구조"다. 시즌마다 다른 형태의 변화와 흔들림을 겪었음에도, 비교적 빠르게 균형을 되찾아 왔다. 이 차이는 개별 자원의 역량보다, 그 자원을 관리하고 재배치하는 조직의 판단 구조에서 비롯된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투자'라는 단어를 어떻게 읽느냐다. 많은 구단이 투자를 말하지만, 어떤 구단은 투자를 결과로만 환산하고, 어떤 구단은 투자를 프로세스로 바꾼다. 전북은 후자에 가깝다.
선수단 운영뿐 아니라 팬 운영에서도 똑같은 특징이 나타난다. 전북은 관중을 늘리는 데서 멈추지 않고, 관중을 팬으로 전환시키는 구조를 만들려 한다. 성적이 좋을 때만 사람이 몰리는 경기장이 아니라, 결과와 상관없이 관계가 유지되는 경기장을 지향한다. 구단 운영의 언어가 경기장 밖까지 뻗어 나온다는 점에서, 전북은 이미 '경기하는 조직'이 아니라 '운영하는 조직'의 얼굴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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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CRM 데이터는 숫자의 나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운영의 방향을 보여주는 지도에 가깝다. 누적 관중 38만 명, 시즌티켓 누적 관중 7만여 명, 일반 유료 티켓 31만여 매라는 총량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전북이 진짜로 공개하고 싶었던 것은 총량보다 구조다. 온라인 예매 비중이 93%라는 것은 관중의 유입 경로 대부분이 디지털로 잡히고 있다는 뜻이다. 스마트폰 QR을 통한 입장 비중이 절반을 넘는다는 대목은 팬의 행동이 입장 게이트에서부터 기록되고 분류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때 CRM은 단순히 메시지 발송 횟수를 늘리는 시스템이 아니다. 구단은 CRM을 통해 팬을 '한 번 방문한 관중'이 아니라, 방문이 이어지는 관계의 단위로 관리한다. 일반 온라인 구매자 가운데 2회 이상 티켓을 구매한 회원 수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는 데이터는 이러한 변화를 보여준다. 관람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반복되는 선택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스포츠 비즈니스의 핵심은 결국 '한 사람의 가치'를 얼마나 길게 보느냐다. 티켓은 그날의 매출이지만, 재방문은 다음 매출의 약속이고, 관계는 장기 수익의 기반이다. 전북이 계정 단위로 회원을 분석하고 세그먼트 기반 타깃 메시지 발송 전략을 도입한다는 것은 구단이 이제 팬을 평균으로 대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평균 관중을 늘리는 방식에서, 팬별 맥락을 읽고 개인별로 설계하는 방식으로 넘어가고 있다.
◇ 해외 구단과 비교하면 무엇이 보이나
해외 프로스포츠에서 CRM은 성과를 설명하는 수단이 아니라, 성과가 반복되도록 만드는 전제 조건에 가깝다. 팬 데이터는 마케팅 부서의 도구가 아니라, 경기장 운영과 수익 구조 전반을 설계하는 언어로 사용돼 왔다.
유럽 축구에서 CRM의 가장 전형적인 역할은 멤버십과 시즌티켓을 중심으로 팬을 장기 고객으로 만들고, 그 관계를 콘텐츠와 커머스로 확장하는 것이다.
예컨대 많은 구단은 멤버십을 단순한 회원제가 아니라, 우선 예매, 전용 이벤트, 구단 소식 접근성, 오프라인 혜택을 묶은 관계 패키지로 설계한다. 멤버십은 티켓 판매를 돕는 도구이면서 동시에 구단이 팬 데이터를 확보하는 핵심 통로가 된다. 전북이 온라인 예매 93%라는 강한 디지털 유입 기반을 확보했다는 점은, 이런 유럽형 멤버십 비즈니스와 연결할 수 있는 토대가 이미 있다는 뜻이다.
미국 프로스포츠에서는 경기 당일의 소비를 포함해 팬 여정 전체를 '하나의 구매 경험'으로 관리하는 문화가 강하다. 티켓 구매, 입장, 좌석에서의 소비, 굿즈 구매, 경기 후 커뮤니케이션까지를 한 흐름으로 묶고, 재방문을 촉진하는 구조를 촘촘하게 만든다. 여기서 CRM은 세일즈 부서의 도구를 넘어, 구단 운영과 결합된다.
전북이 2026년을 목표로 오프라인 매출 데이터까지 CRM과 통합하겠다고 밝힌 것은, 한국 축구가 '경기장 운영형 CRM' 단계로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전북은 이미 디지털 티켓 기반을 안정적으로 구축했다. 이제 남은 과제는 경기장 안에서 벌어지는 소비와 체류 시간을 하나의 흐름으로 묶는 일이다. 전북이 설계하려는 것은 티켓 판매가 아니라, 경기장을 찾은 하루 전체의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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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현대의 지역 분포 데이터는 전북이 '어떤 구단이 되었는지'를 가장 단단하게 보여준다. 전라북도 거주자가 약 72%를 차지하면서도, 다른 지역 방문이 28%에 이른다. 서울과 경기의 비중도 확인된다. 이 숫자는 단지 "전국 팬이 있다"는 자랑이 아니라, 비즈니스적으로 매우 유의미한 신호다.
지역 기반이 강한 구단은 수요가 안정적이다. 반대로 전국구 확장을 노리는 구단은 성장 가능성이 크다. 전북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갖는 구조로 가고 있다. 지역 팬은 구단의 기둥이 되고, 외부 팬은 브랜드의 확장을 만든다.
중요한 것은 이 확장이 지역 정체성을 침식하지 않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전북은 전주월드컵경기장을 중심으로 지역 기반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이동을 감수하고 전주를 찾는 팬층을 확보했다. 이는 단순한 성적 효과만으로는 유지되기 어렵다. 일정 수준 이상의 팬 경험과 운영 신뢰가 필요하다.
이 지점에서 CRM의 역할이 또렷해진다. 지역 팬과 전주 외 지역에 거주하는 팬은 경기장을 대하는 조건부터 다르다. 지역 팬에게 관람은 생활권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일상이고, 지역 커뮤니티와의 연결 속에서 의미를 갖는다.
반면 다른 지역에서 전주를 찾는 팬에게 경기 관람은 가벼운 선택이 아니다. 이동 시간과 비용, 하루 일정 전체를 함께 계산해야 하는 결정이다. 이 차이는 평균값으로는 드러나지 않는다. 팬을 세그먼트로 나눌 때에만, 구단은 서로 다른 조건을 동시에 관리할 수 있다. 전북이 '전주'와 '전국'을 함께 다룰 수 있는 이유는 성적이 아니라, 이러한 관계 운영의 기술을 축적해 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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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단위 관중 증가 데이터는 전북의 비즈니스 이야기를 인간 쪽으로 끌어오는 좋은 지점이다. 성인과 청소년, 어린이 권종을 함께 구매한 팬의 수가 3년 연속 늘었다는 것은 단순히 관객층이 넓어졌다는 뜻이 아니다. 축구장이 특정 연령대의 취미 공간에서,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여가 공간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이 변화는 장기 수익 구조와 직접 연결된다. 아이가 어릴 때 경험한 경기장의 기억은 성인이 된 뒤에도 소비를 만든다. 가족 관객은 경기장 체류 시간을 늘리고, 체류 시간은 경기장 매출과 연결된다. 경기 전후의 소비가 늘어나면 티켓 외 수익, 다시 말해 매치데이 수익의 구조가 튼튼해진다.
전북이 오프라인 매출 데이터를 CRM과 통합하려 한다는 계획은, 가족 관객 증가 흐름과 자연스럽게 맞물린다. 가족 관객이 늘면 경기장 내 소비가 늘고, 소비가 늘면 데이터의 가치가 커진다. 데이터가 커지면 경험 설계가 정교해지고, 정교해진 경험은 다시 가족 관객을 늘린다. 선순환의 고리가 된다.
경기장 입구에서는 아이의 손을 잡은 가족들이 입장 게이트 앞에 줄을 선다. 킥오프를 앞두고 굿즈 매장에서는 어린이 유니폼 사이즈를 고르는 부모들의 발걸음이 멈춘다. 경기 시작 전 시간을 경기장 안에서 보내는 관객의 비중이 늘어난다는 데이터는, 이 장면들 속에서 구체적인 얼굴을 갖는다. 전북현대가 팬을 단발 관중이 아니라 관계로 관리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경기 전 체류 시간의 비즈니스화
입장 시간대 데이터에 따르면, 관중 유입은 킥오프 2시간 전부터 이미 시작된다. 이는 경기 관람이 단순히 90분을 보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 경기 이전의 시간을 포함한 일정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뜻한다. 전북현대의 홈경기는 관중에게 '경기를 보러 가는 약속'이 아니라, 경기 전부터 시작되는 하나의 방문 경험으로 자리 잡았다.
이때 전북이 다음 단계로 제시한 '오프라인 매출 데이터 통합'은 단지 데이터를 모으겠다는 계획이 아니다. 경기장 운영의 정밀도를 한 단계 올리겠다는 뜻이다. 어느 시간대에 무엇이 팔리는지, 어떤 동선을 따라 움직이는지, 어느 구역에서 체류 시간이 긴지, 어떤 유형의 팬이 어떤 소비를 하는지. 이런 데이터가 축적되면 구단은 "경기장 경험"을 감으로 운영하지 않는다.
실제로 많은 해외 프로스포츠 시장에서 경기장 운영은 데이터 기반 최적화가 이루어지는 영역이고, 그 최적화는 티켓 가격을 올리는 것보다 훨씬 부드럽게 수익을 늘린다. 전북이 지향하는 지점도 결국 이곳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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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현대가 보여주는 변화는 전북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북은 K리그가 어떤 운영을 '기준'으로 삼게 될지를 미리 보여주는 사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성적 중심의 단기 경쟁에서, 관계 중심의 장기 운영으로 넘어갈 것인가. 그리고 그 장기 운영을 어떤 도구로 굴릴 것인가. 전북은 팬 데이터를 CRM으로 묶고, 오프라인 매출까지 통합하려 한다. 이것은 단순한 마케팅 강화가 아니라, 구단 경영의 구조를 바꾸는 시도다.
모든 구단이 전북의 길을 그대로 따라갈 수는 없다. 시장 규모도 다르고, 지역 환경도 다르고, 투자 여력도 다르다. 그러나 '관중을 어떻게 팬으로 전환할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자유로운 구단은 없다. 전북은 그 질문에 가장 빠르게 답을 쓰고 있는 구단 중 하나다. 전북이 지금 이기고 있는 팀이 아니라 앞서 가고 있는 팀처럼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북현대는 관중을 모으는 구단에서 관계를 설계하는 구단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 변화가 성공한다면 전북은 스탠다드 세터라는 말을 결과가 아니라 방식으로 증명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방식은 K리그의 다음 경쟁이 성적표만이 아니라 운영 체계의 경쟁이 될 수 있음을 예고한다.
축구는 90분 안에서 승패가 갈리지만, 구단의 경쟁력은 90분 밖에서 더 길게 만들어진다. 전북은 지금 그 긴 시간을 관리하려 한다. 그 선택이 한국 프로축구의 다음 장을 어디로 끌고 갈지는, 2026년의 실험이 답을 보여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