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전 종정 청담스님 속가 딸로 10대 때 출가
최초 비구니 율원 개원, 비구니 승단 발전 앞장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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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전문 작가인 박원자가 3년간 집필한 이 책은 묘엄스님의 생애와 구도 여정을 스님의 육성과 지인들의 회고, 사진 자료와 함께 재구성했다.
조계종 총무원장과 종정을 지낸 청담스님(1902∼1971)의 딸인 묘엄스님은 초등학교 졸업 후 일제의 강제징집을 피해 아버지 청담스님이 있던 대승사로 갔다. 이후 아버지 친구인 성철스님에게 맡겨져 가르침을 받는다.
묘엄스님은 결국 14세가 되는 해인 1945년에 월혜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성철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받았다. 이후 1961년 통도사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받았다. 묘엄이런 법명은 성철스님에게 받은 것으로, 성철스님에게 계를 받은 비구니는 묘엄스님이 유일하다.
한국 현대불교의 대표적인 학승인 운허스님(1892∼1980)에게 경전을 배우는 등 당대 불교계의 내로라하는 스승들에게 가르침을 받으며 선(禪), 교(敎), 율(律)을 두루 갖춘 수행자가 됐다.
묘엄스님은 여기서 더 나아가 1975년 봉녕사 강원(현재 봉녕사승가대학)을 열고 1999년엔 최초의 비구니 율원인 금강율원을 개원해 비구니 강사와 율사를 양성하며 비구니 승단을 발전시키는 데 앞장섰다. 묘엄스님이 2011년 입적하자 그가 길러낸 수많은 제자를 비롯한 수천 명의 조문객이 봉녕사를 찾아 마지막 길을 함께 했다.
박원자 작가는 "근현대 한국 비구니 가운데 선과 교 한 분야에 일로매진한 인물은 많다"며 "그러나 묘엄처럼 당대 선지식들에게 선·교·율을 두루 배우고 철저히 실행해서 세 가지에 능통한 비구니 선지식은 드물다"고 말했다. 박 작가는 "스님이 되려면 '하늘을 덮는 복'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당대 큰스님에게 사사받은 묘엄스님은 금수저가 아닌 '도(道)수저'라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묘엄스님의 공부는 한마디로 어떤 것일까? 이에 대해 상좌이자 봉녕사 주지 진상스님은 "묘엄스님의 기착점은 마음공부였다"며 "큰스님께서는 '도를 공부하는 비구는 하늘에서 의식을 해결해준다'고 늘 말씀하셨다"고 증언했다. 실제로 묘엄스님의 임종 유훈도 "마음공부는 상대적인 부처님을 뵙고 절대적인 나 자신을 찾는 것이다. 자기를 단속해 인천(人天)의 사표가 되고, 생사에 자재해 중생을 제도하라"였다.
봉녕사승가대학 학감 도연스님은 "큰스님이 마을과 가까운 봉녕사에 자리잡고 비구니 승가를 육성하신 것도 단순 불교계 교육자를 넘어 불교 대중화에 원력까지 품으셨기 때문"이라며 "철저한 수행가풍을 지니면서 대중 포교도 잊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수원 봉녕사는 오는 26일 경내에서 묘엄스님의 14주기 추모다례제와 함께 평전 출판 봉정식이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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