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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6년 대한민국의 카이로스와 크로노스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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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2. 02.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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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종 전 카타르대사
우리의 근현대사는 철을 제련해 합금으로 만드는 것과 같은 연단과 융합의 시간이었다. 21세기 새천년에 들어와서는 과학기술의 초월적 발전은 한반도의 시공간을 완전히 변화시켰다. 유라시아 대륙의 변방에서 받은 압박이 신지정학 시대의 개막으로 풀렸고 대한민국은 전 세계와 직접 연결되었다. 4대 강국인 미국과 중국, 일본과 러시아를 우리만큼 정치·경제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고 일상생활 속에서 가깝게 접해 이해하고 있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대부분은 이들 국가 내에 있다.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는 이들 국가와의 적시(適時)의 만남을 통해 오늘의 국력을 성장시킨 사실을 알려준다.

시간은 두 종류로 나눠진다. 객관적 시간과 시계의 침이 각 사람마다 다르게 인식되는 주관적 시간. 사형 집행 직전 사면된 도스토옙스키가 말한 실존적 시간관념이나 유대교에서 말하는 야훼에게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신앙 또는 철학적 사유도 있다. 신의 시간 크로노스(Cronos)는 인간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준 시간이다. 인간이 어떤 관념과 의지로 이를 사용하느냐를 더하면 카이로스(Kairos)의 시간이 된다. 오랜 유랑 생활 속에서도 소멸하지 않은 유대 민족의 힘의 근원이 여기에 있다. 이것이 헬레니즘과 함께 유럽의 역사를 구성하는 양대 뿌리인 헤브라이즘 역사관의 근간이며 로마에서 국교로 발전한 유대-기독교(Judeo-Christianity) 신앙이다. 고난의 역사 속에 하느님의 보우하심을 기원한 한민족의 시간도 이와 유사하다.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는 서로 다른 방향과 속도를 갖고 흐른다. 이 두 개의 시간의 교집합이 만드는 역사는 독일 랑케(L.V.Ranke)의 실증주의 역사보다는 프랑스 아날학파(Annales)의 스토리 역사에 가깝다. 이는 또한 E. H. 카(Carr)의 '과거와의 대화'나 발터 벤야민(W.Benjamin)의 '역사의 솔질(Brushing)'에서 나타나는 시간관념이다. 이는 스토리가 있는 국가가 이긴다거나 신의 섭리와 인간의 의지가 합해 역사를 만든다는 말과 같고 더욱이 현대의 시간은 과학기술에 의해 실제로 변하고 있다. 빠른 속도를 만들어 거리를 줄이고 시간을 늘려왔다. 이러한 시간의 물리적 변화에 따라 관념으로서의 시간도 바뀌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세계의 중심지보다 변방에 더욱 큰 충격을 주었고 지구상 어느 곳과도 신속한 인적·물적 정보의 교류가 가능해졌다. 이러한 변화가 없었다면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세계 각 지역에서 편성된 유엔군이 한반도까지 신속히 이동해 올 수는 없었을 것이다. 16개국의 전투병력과 5개국의 의료지원단 그리고 40여 개 국가에서 물자를 보내와 신생 대한민국을 구원했다. 그리고 한반도의 굴레를 벗겨주는 천우신조의 호기(好機)는 다시금 물리학자들이 "시공간의 수렴(Time Space Convergence)"으로 부른 신시대를 탄생시켜 대한민국에 새로운 지리(地利)를 가져다주었다. 강대국 사이에 끼인 변방국가는 작은 화분에 심은 나무나 어항 속 붕어처럼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새롭게 창조된 메타버스(Metaverse) 공간에서 대한민국은 정치와 경제 그리고 문화의 새로운 영토를 얻었다. 역사는 변방국가의 흥기 과정을 보여주고 오랜 역사의 질곡 속에 고난의 시간을 보낸 한민족에게 역사의 신이 응답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역사적 사실로 대표적인 민족은 유대민족이다. 기원전 1400년 출애굽의 엑소더스 서사가 이와 같고 2000년 만에 나라를 다시 세운 이스라엘의 건국이 그렇다. 기원후 70년 로마 제국에 의해 멸망당한 후 전 세계로 흩어진 유대인 디아스포라는 시대적 격동기마다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의 시간을 자신들에 유리하게 사용했다. 1948년 5월 "시대착오" 또는 "기적"으로 불린 이스라엘의 건국은 이후 초대 대통령이 된 와이츠만(C. Weizmann)의 주도면밀한 정치적 책략과 외교 역량이 추동력이 되었다. 와이츠만은 제1차 세계대전의 와중에 유대민족의 의지를 결집해 카이로스의 시간을 만들었다. 영국과 미국 그리고 아랍의 지도자를 만나면서 '유대인 향토(Jewish national home)' 창설에 협조를 받았고 체코제 비행기와 무기를 반입하면서 전쟁에 대비했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와 러시아까지 열강 내의 유대인들은 '예루살렘(평화의 땅)'과 '텔아비브(봄의 언덕)' 귀환의 꿈으로 국가 건설에 협력했다. 와이츠만은 회고록 '시행과 착오(Trial and Error)'에서 민족국가 창설을 구상하는 동안 성경 느헤미야서를 읽으면서 미래에 팔레스타인에서 맞게 될 초막절(Sukkot)을 상상하면서 기뻐했다고 적었다.

일본이 근대화 시기 국운을 걸고 감행한 일련의 사건은 '야마토다마시(大和魂)'의 국민 단결로 이어져 성공했다는 설명은 사실일 것이다. 우리가 이런 일본을 배우자고 하면서 분열과 투쟁을 일상화한다면, 이는 조선 사대부의 위선이나 허세의 연장이 될 것이다. 1910년 8월 일제는 대한제국을 병합하면서 조선 민족의 특성으로 당쟁과 이기주의를 지적하고 조선 쇠망의 원인이라고 했다. 조선인 지식인층에서도 민족개조론(民族改造論)이 나왔다. 그러나 우리의 근현대사의 고난이 민족성의 결점 때문이 아니라 최고의 합금(合金)을 만들어 내기 위한 연단(鍊鍛)의 시간이었다. 이는 현재 대한민국의 물리적 성장뿐 아니라 정신적 문화강국으로서의 국가 위상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제 광복 후 근 백 년을 앞둔 지금의 시간이야말로 국내외적으로 정치·경제적 위기와 기회가 경합하는 거대한 전환기로 대한민국의 DNA 속에 잠재된 긍정적 역량을 증명해야 할 시기다.

정기종 전 카타르 대사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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