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자금으로 도시 기초 만들어
학교·부두·창고 세운 민간 자본이 도시 골격 형성
|
사천왕은 특정 전설 속 인물이 아니라 메이지 초기 하코다테 상업을 실제로 구축한 상인들을 가리킨다. 히라타 분에몬(平田文右衛門), 와타나베 구마시로, 하야카와 요시자에몬(早川吉左衛門), 다카다야 가헤에(高田屋嘉兵衛) 등 4명이다. 이들은 개항 이후 형성된 무역을 기반으로 항만 물류와 상업망을 조직했다. 도
이들은 단순한 상인이 아니었다. 선박 운송과 창고 운영을 맡아 항구 물류를 구축했고, 자금 조달과 신용 거래를 통해 사실상 금융 기능까지 담당했다. 당시 하코다테에는 중앙정부의 재정 지원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부두 정비와 상업시설 확충, 학교 설립 등 도시 기반이 대부분 지역 상인의 자금으로 이뤄졌다. 현재 항구 주변 상업지구와 주거지역 역시 이 시기 민간 자본 축적에서 형성되었다.
|
동상 바로 옆에는 과거 관청으로 사용되던 옛 홋카이도청 하코다테 지청사가 남아 있으며 현재 카페로 사용되고 있다. 행정 건물 옆에 정치가나 관료의 동상이 아닌 상인 동상을 배치한 이 공간 구조 자체가 하코다테의 형성 과정을 보여준다. 언덕 위의 옛 하코다테 구 공회당과 항구를 내려다보는 위치 역시 성곽이나 관청 중심 도시와 다른 구조다.
하코다테는 일본 최초의 서양 개항도시 가운데 하나다. 막부 말기 개항 이후 외국 선박이 드나들었지만 도시 기반을 마련한 주체는 중앙정부가 아니었다. 부두와 창고, 금융 기능을 실제로 구축한 것은 지역 상인들이었다. 이 때문에 하코다테는 일본의 다른 지방 도시들과 형성 방식이 다르다. 많은 일본 도시는 성곽과 관청을 중심으로 발전했지만 하코다테는 항구와 시장, 창고를 중심으로 확장됐다. 행정기관이 도시 중심이 아니라 상업 활동이 중심축이었다.
|
모토마치 공원의 사천왕 동상은 단순한 기념물이 아니라 이 도시의 형성 방식을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하코다테항은 행정이 계획해 만든 도시가 아니라 시민과 상인이 축적해 형성한 항구도시라는 의미다. 1편에서 오이즈미 준 하코다테 시장이 "도시가 유지되기 때문에 관광이 생긴다"고 설명한 내용은 역사적으로 이미 반복돼 왔다. 하코다테는 관광을 만들기 위해 도시를 유지한 것이 아니었다. 시민생활과 상업이 먼저 존재했고 그 결과 관광지가 된 도시였다. 사천왕 동상은 하코다테의 역사를 웅변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