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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서의 도쿄시선] 자리가 하나라면, 할머니와 아이 중 누가 앉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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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10. 05.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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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서 일본 슈메이대학교 교수
송원서 일본 슈메이대학교 교수
오랜만에 찾은 하코네에서 등산열차를 탔다. 산길을 따라 내려오는 40분 남짓한 여정에 중국인으로 보이는 세 모녀가 객차에 올랐다. 할머니와 엄마, 예닐곱 살쯤 된 손녀였다. 빈자리는 하나였다. 자연스레 할머니가 앉으리라 생각했는데, 자리에 앉은 사람은 어린 손녀였다.

아이는 곧 잠이 들었다. 고개가 앞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엄마는 양손으로 딸의 머리를 받쳤다. 할머니는 짐까지 든 채 서 있었다. 잠깐 그러다 자리를 바꾸겠거니 했지만, 그 모습은 거의 40분 동안 이어졌다. 창밖의 풍경보다 세 사람에게 자꾸 눈길이 갔다. 아이의 잠을 지키는 엄마의 두 손과 짐을 든 할머니의 모습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내가 그 엄마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아마 내 어머니에게 먼저 자리를 권했을 것이다. 아이도 피곤하겠지만, 나이 든 어머니가 오래 서 있는 모습은 마음에 걸렸을 터다. 딸의 머리를 계속 받쳐주기 전에 어머니의 짐부터 살폈을 것 같다. 어른에게 자리를 양보하라고 배워온 내게는 익숙한 판단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적지는 않은 모양이다. 한국리서치가 2025년 전국 성인 1000명을 조사한 결과, 74%가 교통약자석은 노인에게 우선권이 있는 좌석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교통약자석에 관한 인식을 모든 가족의 좌석 배분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나이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몸의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 상하이의 도시철도 승객 수칙은 노인과 어린이, 환자, 장애인, 임산부 등을 함께 양보 대상으로 규정한다. 일본 JR동일본 역시 고령자와 장애인, 임산부, 영유아 동반자를 우선석 이용 대상으로 안내한다. 어느 쪽도 이들 사이에 고정된 서열을 두지 않는다.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할머니 먼저'라는 순서에도 그 순간 누가 더 힘든지를 묻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 가족에게는 내가 모르는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아이가 몹시 지쳤거나 몸이 좋지 않았을 수도 있고, 할머니가 기꺼이 자리를 내줬을 수도 있다. 잠든 아이의 머리를 받쳐주는 손길에서는 엄마의 다정함도 읽힌다. 그날의 장면만으로 아이의 버릇이나 한 나라의 양육 문화를 재단하기에는 내가 아는 것이 너무 적다.

그런데도 마음 한편에 질문이 남았다. 우리는 아이를 돌볼 때 곁에 있는 어른의 피로도 함께 살피고 있을까. 아이가 조금만 힘들어해도 곧바로 반응하면서, 부모 세대의 수고는 가족을 위한 당연한 몫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지는 않을까. 아이에게 향하는 관심이 커질수록 그 아이를 함께 키우는 사람들의 몸과 시간도 돌아봐야 한다. 가족을 사랑해서 기꺼이 하는 일에도 피로는 차곡차곡 쌓일 수 있다.

내가 비슷한 상황에 놓인다면 어머니에게 먼저 앉으시라고 말씀드리되, 아이의 상태도 살필 것이다. 둘 다 힘들다면 번갈아 앉을 방법을 찾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짐은 내가 들겠다. 아이가 받아들일 여유가 있다면 할머니도 다리가 아플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양보를 배울 기회는 거창한 훈계보다 이런 생활 속에서 생긴다.

어른을 공경하라는 말을 아이에게 건네면서 정작 내가 부모의 피로를 지나친다면 그 말은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아이는 자기에게 쏟아지는 사랑과 함께, 어른들이 서로를 대하는 태도도 보고 자란다. 부모가 조부모에게 자리를 권하고 짐을 나눠 드는 모습은 다른 사람의 수고를 알아차리는 첫 수업이 될 수 있다.

하코네 열차의 빈자리 하나는 여행이 끝난 뒤에도 쉽게 잊히지 않았다. 같은 자리에 어떤 가족이 올라탔느냐에 따라 선택은 달라졌을 것이다. 독자들도 잠시 그 객차에 자신을 놓아보면 어떨까. 내 어머니와 내 아이를 데리고 여행하는 길, 빈자리는 단 하나다. 누구에게 앉으라고 말할 것인가. 그리고 서 있는 사람의 짐은 누가 들 것인가.

/송원서 일본 슈메이대학교 교수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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