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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평안북도 선천군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6년 중학교 3학년 때 만화 '물레방아'로 데뷔했다. 이후 명랑만화와 시대극 등을 발표하며 활동했으며, 1960년대 후반에는 TBC 동화부에서 '황금박쥐', '요괴인간' 등의 애니메이션 원화 제작에도 참여했다.
고인의 만화 인생을 대표하는 작품은 1990년부터 '소년조선일보'에 연재한 '뚱딴지'다. '뚱딴지' 캐릭터를 앞세워 30년 가까이 어린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며 한국 명랑만화의 한 시대를 이끌었다.
박인하 서울웹툰아카데미 이사장은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 고인을 추모하는 글을 올리고 "가난과 전쟁이라는 척박한 현대사를 묵묵히 이겨내며 독자들에게 위로와 웃음을 전했던 고인의 따뜻한 펜선은 우리 곁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적었다.
김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한국 현대사의 격변을 겪었다. 해방 직후 공산당의 숙청을 피해 7세에 가족과 함께 월남했으며 피난 과정에서 어머니를 잃었다. 이후 강원도 도계와 경북 영주, 부산 동래 등지를 오가며 피난 생활을 이어갔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만화가에 대한 꿈을 키웠다. 조부의 반대에도 만화책을 보며 그림을 그렸고, 미술적 재능을 알아본 김윤명 선생을 만나 만화가의 길에 들어섰다.
1956년 중학교 3학년 때 만화 '물레방아'로 정식 데뷔했다. 이후 '서름길 구만리', '철쭉꽃 피는 고향' 등을 발표했으며 1958년 잡지 '만화소년소녀'에 명랑만화 '팔삭동이'를 연재하며 이름을 알렸다.
특히 이두호 작가와 함께 '소년중앙'의 원고료 인상을 요구하는 활동을 벌이는 등 당시 만화가들의 권익 개선에도 목소리를 냈다. 두 사람은 원고료 인상을 요구했다가 6개월간 연재가 중단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생전 급성신부전증을 앓으면서도 창작 활동을 이어갔으며 한국기독만화선교회 회장을 맡아 선교 만화 창작에도 힘썼다.
고인은 2004년 제4회 고바우 만화상, 2009년 제25회 색동회 눈솔상을 수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