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상황에 밝은 베이징 소식통의 20일 전언에 따르면 이런 분석은 시위대 최후의 보루로 여겨진 홍콩이공대가 사실상 함락되면서 현실화했다. 이제 고작 100여명만이 한때 해방구로 인식되던 대학 교정에 남아 있는 상태에서 지속적인 저항은 거의 불가능하다.
로이터통신은 홍콩 경찰이 이공대를 나흘째 봉쇄하는 강도 높은 고사 작전을 벌이면서 시위대의 힘을 빼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전의를 상실한 100명 남짓 시위대는 밧줄을 타고 하수구를 기어 탈출을 시도하고 있으나 대부분 실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진압에 탄력이 붙은 강경파 신임 경찰 총수는 취임 후 첫 조치로 200여명을 폭동죄로 기소하는 초강수를 뒀다. 크리스 탕 경무처장은 경찰 새 총수로 전격 발탁된 뒤 취임한 19일을 전후해 진압 강도를 몇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
경찰에 의해 초토화되는 시위대를 목도한 시민들마저 기가 꺾었다. 모 항공사 부기장인 30대 후반의 저우(周) 모씨는 “지금의 경찰은 불과 며칠 전까지의 그들 모습과는 완전히 다르다. 상부의 지시가 있었는지 죽기 살기로 진압에 나서고 있다. 시위대는 이제 완전히 풀이 죽었다”면서 앞으로 대형 시위의 불꽃이 되살아나기는 어려울 걸로 내다봤다.
미완으로 막을 내릴 가능성이 높아진 홍콩 사태가 발발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가장 결정적인 것 중 하나는 중국의 내로라하는 특권층이 홍콩에서 초호화판 생활을 하면서 조성한 위화감을 빼놓을 수 없다. 홍콩은 중국에 주권이 반환되기 전까지만 해도 열심히 노력하면 중산층이 그래도 살 만은 했다.
하지만 매년 5만명씩 쏟아져 들어오는 중국인들 사이에 엄청난 재산을 가진 귀족층들까지 슬며시 이주하면서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들이 이른바 ‘쉬안푸(炫富·부의 과시)’를 하자 주택 가격을 비롯한 모든 게 폭등해 버린 것이다. 이로 인해 홍콩의 젊은이들은 서서히 희망을 잃어갔다. 불만은 급기야 중국과 특권 계층의 중국인들에 대한 적개심으로 이어졌을 뿐 아니라 시위의 기폭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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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사태는 조만간 종식이 되더라도 후유증이 많이 남을 수밖에 없다. 중국 당국으로서는 적극적인 수습책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려면 왜 사태가 발생했는지에 대한 근본 원인부터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