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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비동의 강간죄 도입 추진

덴마크, 비동의 강간죄 도입 추진

기사승인 2020. 09. 04.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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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rus Outbreak Europe Borders <YONHAP NO-5006> (AP)
1일(현지시간) 닉 해커럽 덴마크 법무장관은 비동의 강간죄 도입을 위해 정치합의문을 발표했다.사진은 기사내용과 관련 없음./사진=AP 연합
닉 해커럽 덴마크 법무장관은 지난 1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통해 비동의 강간죄 도입을 위한 정치합의문을 발표했다.

현행 형법상 강간조항에 따르면 피의자가 일련의 강압적인 방법을 사용했거나, 피해자가 저항을 하기 어려운 상태 또는 상황이었어야 강간죄가 성립된다. 즉 술을 마셔 인사불성의 상태에서 이뤄진 성관계는 강간죄가 성립되지만, 성관계를 원하지 않는다고 피해자가 성관계를 원치 않음을 구두로 밝히고 관계 자체에서 전적으로 수동적인 자세로 일관했더라도 강간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이번 합의문의 핵심은 강압적인 방법이 사용되지 않고 피해자가 적극적 저항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성관계에 대한 동의의사를 표시하지 않은 상대와 성관계를 가진 자체만으로도 강간으로서 처벌할 수 있게 하는데 있다. 합의문에 따르면 강간죄가 성립하지 않기 위해서는 관계 당사자 모두가 자유 의사로 성관계에 대한 동의의사를 표시해야 하며, 처음에는 동의했다가 나중에 이 동의를 철회했을 시 철회 당시에 상대방이 관계를 중지하지 않아도 강간죄가 성립된다.

합의문은 최근 높아진 강간처벌규정 개정에 대해 늘어난 수요를 반영한 결과이다. 지난 몇년간 전세계적로 퍼진 미투운동은 덴마크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수많은 여성이 현행법안에 따라서 강간으로 처벌되기 어려운 직장내 위계관계를 악용한 성폭력 경험을 공유한 바 있다.

이러한 사회적 움직임을 배경으로 해서 이번 합의문은 위계 관계에서 발생한 성관계로 공포나 두려움 등으로 몸이 얼어붙어 반대의사를 표시하지 못했으나, 상대의 요구에 수동적으로 반응해 일어난 성관계 등도 강간으로 처벌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법조계로부터 입법취지에는 동의한다면서도 해당 합의문의 내용은 덴마크 법전통을 거스르는 것이라며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어떤 경우에 상대방이 동의를 표시했다고 또는 표시하지 않았다고 이해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가 불분명하고, 대부분 밀폐된 사적인 공간에서 이뤄지는 성관계에 대해서 동의여부를 어떻게 기소당국이 입증을 하기가 어려워 사실상 피의자에게 입증책임을 넘기려는 법안이 되는 게 아니냐는 것이 법조계 비판의 골자다. 이는 법무부 장관이 “동의 표시 여부는 정형화된 형태로 평가되지 않고, 기소건별로 구체적 정황과 증거를 통해 판단될 것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라고 발표한 내용과 대치된다.

주요 보수일간지 베얼링스케는 9월 2일자 신문을 통해 “이번 합의문은 유죄판단기준를 매우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명백한 입증이 어려운 혐의에 대해서는 피의자의 손을 들어주는 덴마크 형법 전통을 거스르는 것으로, 개정강간조항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불분명한 조항이 되어 법집행에 혼선을 야기할 것”이라는 주요 법조계 인사의 의견을 인용해 법조계 내부의 강경한 비판입장을 전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지난 달 이와 유사한 내용을 골자로 한 비동의 강간죄 법안이 정의당 류호정 의원을 통해 대표발의되었다. 이에 대한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았으나 지난 2018년 안희정 전 충남지사 성폭행 사건 및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 사건을 계기로 여야 내 모두에서 비동의 강간죄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덴마크의 비동의 강간죄 도입을 위한 합의문은 아직 입법 과정을 거치지 않았으나 이번 정당 합의문으로 채택된 내용은 이변이 없는 한 개정안으로 반영될 것이 예상된다. 덴마크에서는 국회 의석수 과반 이상의 동의를 받아낸 정치합의문을 발표한 사안의 경우 입법 과정 중 총선이 개시되거나 합의를 철회할 만한 특별한 사안이 발생되지 않는 한, 관련 정부부처에서 정치합의문을 기반으로 마련한 입법안을 국회가 전적으로 또는 일부 수정하여 채택·시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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