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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물 위에도 산과 나무...수채화 같은 호숫길

[여행] 물 위에도 산과 나무...수채화 같은 호숫길

기사승인 2020. 11. 17.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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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횡성호수길' 5구간
여행/ 횡성호수길
‘횡성호수길’ 5구간. 산과 나무가 미동 없이 적요한 수면에 반영되는 풍경이 수채화 같다.
강원도 횡성은 산 높고 골 깊은 땅이다. 그런데 정작 ‘핫’한 곳은 호수다. 대체 이 산중에 호수가 있었던가. 갑천면의 횡성호는 2000년 11월 횡성댐이 들어서며 생겼다. 호수를 에둘러 약 31.5km의 ‘횡성호수길’도 정비됐다. 특히 걷기가 편하고 풍경이 예쁜 5구간이 입소문을 탔다. 알음알음 찾는 사람들이 생기더니 이제는 유명세가 ‘횡성한우’ 못지않다. 횡성군에 따르면 지난해 횡성을 다녀간 관광객은 약 250만명. 이 가운데 10% 가까운 약 23만명이 이 길을 걸었다. 결코 적지 않은 숫자다. 횡성의 관광지 가운데 단연 톱이다.

여행/ 횡성호수길
‘횡성호수길’ 5구간. 자꾸만 호수에 손을 담그고 싶어질만큼 길과 호수가 가까이 있다.
여행/횡성호수길
‘횡성호수길’ 5구간. 자꾸만 호수에 손을 담그고 싶어질만큼 길과 호수가 가까이 있다.
팔도에 호수 끼고 도는 길은 많다. 횡성호수길은 6개 구간으로 나뉘는데 대부분이 5구간을 걷는다. 대체 뭐가 좋을까. 심은경 횡성군청 관광마케팅 팀장은 “횡성호수길 다른 구간은 길이 등산로 수준이다. 그런데 5구간은 경사가 거의 없다. 또 출발지점과 도착지점이 같은 순환형 코스라서 가족들이 많이 찾는 것 같다”고 했다.

풍경을 음미하고 마음을 살피며 걷는 산책길은 판판해야 한다. 걷는 게 힘들면 풍경을 좇을 생각이 안 든다. 당연히 놓치는 것도 많다. 반대로 여유가 있어서 풍경에 눈길을 주다 보면 마침내 자신의 내면까지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이게 산책의 매력이다. 횡성호수길 5구간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열린 관광지’다. 열린 관광지는 장애가 있는 사람도 편하게 다닐 수 있도록 조성된 무장애 관광지다. 그만큼 걷기가 편하다는 얘기다. ‘가족길’이라는 별칭도 그래서 붙었다. 아이가 있는 가족, 곱게 차려 입은 연인도 부담 없이 찾는 이유다.

순환형이냐, 아니냐도 걸으려는 사람에게는 중요하다. 자가용을 가져갔다가 출발지와 도착지가 달라 종종 불편을 겪는다. 이 경우 중간쯤에서 원점회귀하거나 코스를 완주한 후에 택시나 버스를 타고 출발지로 돌아와야 하는 수고가 필요하다. 순환형 코스라면 이런 부담이 없다.

걷기가 편하다고 다 ‘좋은 길’은 아니다. 감동이 있어야 한다. 횡성호수길 5구간은 풍경이 예쁘다. “특히 단풍이 화려한 가을이 좋지만 하얀 눈 내린 겨울 풍경도 아름답다”는 것이 심 팀장의 설명이다. 물론 신록 화사한 봄이나 녹음 짙은 여름에도 이름값을 톡톡히 한다.

여행/횡성호수길
‘횡성호수길’ 5구간.
여행/ 횡성호수길
‘횡성호수길’ 5구간. 금빛으로 반짝이는 갈대가 운치를 더한다.
5구간은 A코스(4.5km)와 B코스(4.5km)로 나뉜다. 특히 B코스가 좋다. 호수를 끼고 도는 조붓한 오솔길의 분위기가 평온하다. 곡선 구간이 많아서 풍경이 지루하지 않은 것도 좋다. 같은 곳이라도 보는 각도에 따라서 따라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길은 은사시나무 군락을 지나고 낙엽송 숲도 관통한다. 금빛으로 반짝이는 갈대 군락을 끼고 돈다. 호수 건너편에는 하얀 수피를 드러낸 자작나무가 여백을 채운다. 중간중간 아기자기한 조형물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하고 시야가 탁 트인 전망대는 도시인의 가슴을 후련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호수에 반영된 풍경이 백미다. 수면이 어찌나 잔잔한지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산과 나무, 길과 사람이 오롯이 호수에 비친다. 이 풍경이 묘한 힘을 가졌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음도 미동 없이 적요해진다. 심 팀장은 “사방에 산이 많아 센 바람이 불지 않는 것 같다. 몇 차례 걸어 봤지만 그 때마다 수면이 한결같이 잔잔했다”고 말했다. 지금 이곳에선 계절이 교차하는 중이다. 단풍무리는 이미 떠났고 나무들이 잎새를 대부분 떨어냈다. 그래도 여전히 가슴이 뛰는 이유는 모든 것이 위아래로 대칭이 되는, 이토록 몽환적인 풍경 때문일 거다. 요즘에는 이른 아침에 물안개까지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여행/ 횡성호수길
‘횡성호수길’ 5구간. 은사시나무 군락.
여행/횡성호수길
‘횡성호수길’ 5구간. 낙엽송 군락.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는 “해외 여행지에서 본 멋진 나무와 호수 풍경을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어서 좋았다”는 반응이 많이 올라온다. 또 “자꾸 물을 만지고 싶어진다”는 사람도 있다. 그만큼 길이 호수와 가까이 붙어 있다. 멀리서 호수를 바라보는 기분과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호수를 마주하는 기분은 완전히 딴판이다. 뭍을 비비는 미세한 물결의 움직임에도 가슴이 마구 뛴다. 이게 ‘힐링’이다. 자연의 작은 변화에 눈이 뜨이고 싱싱한 소리에 귀가 열리는 것. 시나브로 몸도 마음도 자연이 된다.

횡성호수길 5구간을 걸으려면 ‘망향의 동산’을 찾아가야 한다. 출발점이자 도착점이다. 망향의 동산은 횡성호가 생길 때 수몰된 마을의 주민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조성했다. 당시 갑천면 일대 5개 마을, 258세대가 물에 잠겼단다. 맑은 풍경에 애틋함이 보태지니 울림이 더 크다. 횡성호수길 5구간 입장료는 어른 기준 2000원이다. 현금처럼 사용하는 횡성관광상품권으로 환급해주니 사실상 무료다. 2~3시간이면 완주할 수 있다. 풍경에 푹 빠지면 더 걸린다.

횡성호를 위에서 한눈에 내려다 볼 수는 없을까. 있다. 갑천면의 산림휴양농원펜션 ‘노아의 숲’이 있는데 이곳 뒷산 정상부가 멋진 전망대다. 산중에 보석처럼 박힌 횡성호의 수려한 자태가 볼만하다. 전망대까지 가파른 경사를 따라 약 20분 걸어 오른다. 모노레일을 타고 가기도 한다. 노아의 숲은 숙박은 물론 숲 탐방이나 해설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숙박이든 전망대 탐방이든 방문 전 사전예약 해야한다.

여행/ 횡성호
‘노아의숲’ 전망대에서 본 횡성호.
여행은 호기심이다. 횡성호수길을 걸으려고 온 사람들은 서원면의 풍수원성당도 들른다. 횡성 관광지 가운데 두 번째로 관광객이 많이 찾는단다. 붉은 벽돌 고딕양식 건물이 예뻐서 영화나 드라마에 종종 등장했던 성당이다. 신유박해(1801)·병인양요(1866)·신미양요(1871년) 당시 신도들이 박해를 피해 모인 것이 시작이다. 당시에는 초가 사랑방에서 기도를 했다. 초가는 한국에서 네 번째 들어선 성당이 됐다. 현재의 본당 건물은 1907년에 완성됐다. 본당 건물 앞 우람한 느티나무도 멋지다. 볕 쬐며 쉬어가기 좋다. 요즘은 야트막한 언덕에 조성된 ‘십자가의 길’이 운치가 있다. 예수가 사형선고를 받은 후 십자가에 못박히는 과정을 조각이나 그림으로 보여주는 길이 십자가의 길이다. 성당마다 다 있다. 그런데 풍수원성당의 그것은 야트막한 산을 타고 솔숲으로 난 길을 따라 오르게 돼 있다. 숲이 좋고 고즈넉한 분위기도 운치가 있다.

여행/ 풍수원 성당
붉은 벽돌 고딕 양식의 풍수원성당.
여행/ 횡성루지
옛 국도 42호선에 만들어진 ‘횡성루지’.
우천면에서는 ‘횡성루지’도 탄다. 루지는 소형썰매다. 최근 들어 전국에 루지 체험장이 많이 생겼다. 횡성루지는 여느 곳과 조금 다르다. 옛길을 오롯이 이용했다. 서울과 강릉을 오가던 옛 국도 42호선 안흥면-우천면 일부 구간에 만들어졌다. 길이가 2.4km나 된다. 실제 도로를 이용해 조성한 코스여서 짜릿함이 배가된다.

횡성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이제 한우만 먹고 가지 않는다. 수채화 같은 호숫길을 걷고 그림 같은 성당을 구경하고 ‘옛길’에서 신나게 루지도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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