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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TSMC 또 압박한 美 상무부, 속내는 “중국에 얼마나 파는지 밝혀라”

삼성전자·TSMC 또 압박한 美 상무부, 속내는 “중국에 얼마나 파는지 밝혀라”

기사승인 2021. 09. 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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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사 정보 요구하는 美 상무부
이미 하이실리콘 손절한 TSMC
메모리반도체 여전히 중국에 많이 파는 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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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백악관과 상무부가 삼성전자와 TSMC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에 재고, 주문, 판매 자료를 45일 내에 제출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반도체의 재고 수준은 매월 시장조사업체의 추정치가 공개되고 있지만, 주문 내용과 판매처는 고객사의 신제품 사양과 연관되는 대외비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미국에 재고, 주문, 판매 자료를 제출하면 대중국 반도체 사업 규모가 노출된다는 점도 부담 요인이다.

26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TSMC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 상무부에 제출할 재고, 주문, 판매 자료의 범위 파악에 한창이다.

브라이언 디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과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 주재로 지난 23일(현지시간) 열린 ‘제3차 반도체 대책 화상회의’에서 1~2차 회의때보다 강경한 요구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번 회의에는 최시영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장(사장), 펫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 등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 대만 TSMC,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마이크로소프트 등 반도체 생산과 수요기업이 한데 모였다.

미 상무부 기술평가국도 곧장 움직였다. 지난 24일(현지 시간) 게재한 관보를 통해 국내외 반도체 제조사를 비롯한 중간·최종 사용자 등 공급망 전반의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에 나선 것이다. 백악관이 소집한 반도체 대책회의의 후속 조치다. 조사 마감은 45일 후인 오는 11월 8일이다. 설문 대상은 백악관 영상회의에 참석한 기업만이 아니라 글로벌 반도체 기업을 대상으로 했다.

14개 항목의 설문에는 반도체 기업의 기밀 사항이 대거 포함됐다. 대표 제품의 상위 3대 고객 명단, 예상 매출, 제품별 매출 비중, 최근 3년의 매출 등이다. 반도체 수급난 발생시 어떤 기준으로 고객에게 물량을 배정하는지도 물었다.

일각에서는 이번 조사의 이유로 미국이 반도체 부족현상을 중국의 사재기 탓으로 봤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해 3분기 미국의 중국 화웨이 제재 직전 중화권 스마트폰 업체들이 부품을 싹쓸이 하다시피 했다”며 “미국이 반도체 업체들의 판매처와 주문 내용을 요구한 것은 자동차, 전자제품용 반도체 부족 현상의 배경에 중국이 있다고 보고 있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이 관계자는 또 “미국 자동차 기업들이 왜 반도체가 부족한지 파악하는 것과 동시에 글로벌 반도체 제조사들의 대중국 매출을 점검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고 했다.

국내에서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와 시스템반도체 모두 중국 매출 비중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대중국 매출 규모는 올해 상반기 22조1839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17.1%에 이른다. 삼성전자의 메모리반도체 상당수가 홍콩을 통해 중국 정보기술(IT) 업체로 판매되고 있다. 미국의 직접적인 제재를 받고 있는 화웨이와 하이실리콘과는 진작 거래를 끊었지만, 그 외 중국 고객사는 아직 건재한 상황이다. 삼성전자가 인텔, TSMC와 달리 미국 신규 반도체 공장 투자 부지를 결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부담을 키우고 있다.

TSMC는 삼성전자보다 상황이 나은 편이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더인포메이션네트워크에 따르면, TSMC의 주요 고객사 가운데 중국 하이실리콘의 매출 비중은 올해 0%다. 지난해 3분기 미국이 화웨이 제재를 본격화하자 TSMC의 자회사인 하이실리콘과 거래를 중단했다. 하이실리콘은 2019년 TSMC 매출의 15%를 차지할 정도로 큰 고객사였지만 단칼에 미국 편으로 돌아섰다. TSMC는 첨단 반도체를 제외한 범용 제품을 중국 업체들에 판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고객사의 반도체 주문 내용을 제출해야 한다는 점은 삼성전자와 TSMC의 위기다.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의 경우 고객의 주문 내용은 곧 설계도다. 고객사가 주문한 반도체의 성능은 신제품 사양과 직결되는 극비사항이 대다수라는 점에서 부담이 크다. 상무부가 미국 내 반도체 부족현상 해결을 내세워 글로벌 기업들의 내부 기밀까지 요구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지점이다.

미국 상무부는 기업들의 ‘자발적인 정보공개’라고 강조했지만, 반도체 업계에선 압박성 조치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러몬도 장관은 회의 직후 “(반도체 공급난) 상황이 더 나아지지 않고 있고 어떤 면에서 더 나빠졌다”며 “기업들이 정보를 제출하면 병목현상이 어디서 발생하는지 알아내고 문제에 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반도체 기업들이 협조하지 않는다면 취할 조치가 있다. 그렇게까지 가지 않길 바라지만 해야 한다면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반도체 기업의 한 관계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의 주인이 갑자기 내부정보를 적어 내라고 하더니, 자발적으로 정보를 주지 않으면 조치를 취하겠다는 아이로니컬한 상황”이라며 “설문에 응하지 않을 기업이 세계 어디에 있겠느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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