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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학 칼럼] 파리헌장 이후 30년, 유럽은 어디로?

[강성학 칼럼] 파리헌장 이후 30년, 유럽은 어디로?

기사승인 2022. 10. 1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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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학 고려대 명예교수 인터뷰
강성학 고려대 명예교수
20세기는 강대국 간 거듭된 전쟁과 긴 평화의 시대였다. 350여 년 전에 유럽인들은 1648년 베스트팔렌(Westfalen) 조약으로 근대 주권국가제도를 창립한 이래 그들은 유럽의 국제체제를 형성하여 국가 간 끝이 없는 영토 확장을 위한 권력투쟁을 시작했다. 그 후 국가 간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자연상태라서 '국제정치는 곧 권력투쟁'이라는 국제정치학의 지배적 패러다임을 창조하여 그것을 역사적으로 꾸준히 계승했다. 이뿐만 아니라 유럽의 국제사회는 유럽의 앞선 산업화에 힘입어 점차 전 지구적으로 확장되었다.

그리고 20세기 전야에 미국이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그리고 곧 뒤따른 20세기 여명에는 러일전쟁으로 유럽의 국제체제는 전 지구적으로 확장된, 진정으로 세계화된, '국제정치체제(the international political system)'로 발전되었다. 그 결과 세계화된 지구는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을 경험했다. 제2차 대전 후 수립된 범세계적 국제체제는 동서진영 간 치열한 냉전시대였지만 그것도 국제적 양극체제로서 여전히 본질적으로 유럽의 베스트팔렌 체제의 속성을 그대로 유지했다.

파리헌장(the Charter of Paris)은 1990년 11월 말 파리에서 3일 동안 미국, 소련, 영국, 독일 및 프랑스를 포함하여 유럽의 34개국 국가원수나 정부 수반들이 모여 합의한 것이었다. 그것은 냉전종식 이후 유럽인들이 함께 지켜 나갈 새로 수립된 일종의 헌정질서였다. 유럽인들은 그것을 파리헌장의 제1장에서 '민주주의 그리고 평화와 통일의 새 시대(A New Era of Democracy, Peace, and Unity)'의 출범을 선포했다.

그리하여 파리헌장은 다소 명시적으로 이루어진 유엔헌장의 수정과 확장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베르사유 체제와 제2차 세계대전 후 샌프란시스코 체제에 대한 최종적 수정판으로 그것은 1975년의 헬싱키의 최종결의서를 필두로 하여 '유럽의 재래식 무력(the Conventional Forces in Europe, CEF)'에 대한 조약을 환영하고, 그리고 독일을 통일한 1990년 9월 12일 모스크바에서 서명된 독일에 관한 최종타결조약의 명시적 승인을 담고 있었다.

이제 유럽인들은 파리헌장이 적어도 유럽에서는 진실로 새로운 시대의 출범을 의미한다고 인식했다. 파리헌장 체제는 하나의 보편적 국제법을 통해 유럽의 주권국가들을 공식적으로 세계화 과정을 완결하는 표상으로 보였다. 어쩌면 국제사회에서 법의 통치라는 약 200년 전 임마누엘 칸트가 그의 '영구 평화론'에서 꿈꾸고 또 약 80년 전 우드로 윌슨의 세계평화에 대한 비전이 이제야 비로소 현실화된 것으로 보였다. 그리하여 당시 마가렛 대처 영국수상은 이 역사적 파리헌장을 '새로운 마그나 카르타(New Magna Carta)'라고 불렀다.

파리헌장 체제의 수립은 유럽인들에게 미증유의 안전과 평화의 시대를 가져왔다. 그들은 자유와 평화, 그리고 높은 생활수준을 만끽했다. 그들은 모두 평화주의자임을 스스로 선언했지만 그런 선언만으로 평화가 보장되는 경우는 역사에 거의 없었다. 유럽인들이 향유하는 자유와 안전은 나토(NATO)의 지도국으로서 미국이 거의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안전을 누리면서도 자신들이 향유하는 자유와 평화의 수호자로서 책임을 회피했다. 유럽인들은 일종의 '무임승차자'였으며 순전히 '평화의 소비자'였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유럽 국가들은 파리헌장에 요구하는 재래식 무기감축의 조약을 구실삼아 독자적으로 전면전쟁을 수행할 재래식 군사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지도 않았다.

그들은 유럽의 안보와 평화를 위한 모든 책임을 미국에 전가해 버린 것이다. 나토 동맹국들의 이런 뻔뻔한 태도를 보다 못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를 외치면서 나토 정상회담에서 동맹국들에게 그들의 마땅한 책임을 다하라며 노골적인 분노를 터트리기도 했지만 그러나 유럽인들에겐 마이동풍이었으며 그들은 오직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하자 유럽인들은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사회를 불안하게 하는 호전적 인물이었다는 비난을 쏟아냈다.

그러다가 청천하늘에 날벼락처럼 지난 2월 24일 러시아가 특별 군사작전이라는 미명하에 인접국인 우크라이나를 불법 기습 침략을 감행하자 유럽인들은 갑자기 제정신이 들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우크라이나는 나토의 회원국이 아니며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소비에트-러시아의 사실상 식민지나 다름이 없었다. 이뿐만 아니라 2014년 러시아가 기습적으로 군사력을 사용하여 크림반도를 병합했지만 유럽인들은 아무런 저항이나 응징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며, 유엔 안보리에 의제로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피침의 당사국인 우크라이나도 소리 높여 러시아를 규탄했을 뿐 실지회복을 위한 어떤 저항적 행동도 보여주지 못했다. 이런 우크라이나와 서방국가들에 의한 기정사실화는 러시아 푸틴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 전체를 러시아의 국가적 안전을 위한 일종의 완충국으로 변질시키려는 강렬한 유혹에 사로잡히게 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제2의 침공을 단행케 한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의 제2차 침공은 우크라이나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했고 또한 우크라이나인들이 자신의 조국을 위해 싸울 의지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 유럽국가들이 우크라이나를 범유럽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하면서 이 전쟁은 파리헌장 체제의 수립 30년 만에 자신들의 선조들이 알려준 국제정치의 본질을, 너무도 갑작스럽게 그리고 새삼스럽게 상기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유럽국가들은 그동안 보유 중인 낡은 무기들을 마치 '쓰레기 하치장'에 버리듯이 우크라이나에 너도나도 서둘러 제공하고 자신들은 최신식 무기로 새롭게 무장하려는 뚜렷한 정책적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유럽은 파리헌장체제의 수립이후 지난 30여 년간 순전히 평화 소비자의 태도에서 벗어나 자국 안전의 수호자가 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환언하면, 이러한 움직임은 유럽인들이 그동안 빗나간 역사의 진행궤도에서 벗어나 일종의 '미래로 복귀(Back to the Future)'를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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